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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나의 세기

<논단>나의 세기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8.01.1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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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객원 논설위원, 현대수필로 등단, 수필가)

나이 칠십이 넘었다. 남들처럼 고등학교에 대학까지 나왔다. 군대를 다녀왔고 명퇴까지 했다. 그래도 나의 세상은 모호하기만 하니 덜떨어진 것일까. 세상을 잘 못 산 것일까.

신문도 그렇다. 조중동에 한겨레까지 네 가지 신문을 삼 개월 동안 돌려가며 읽었다. 그래도 어느 신문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TV 또한 그렇다. 박근혜 정부의 TV가 다르고 문재인의 그것이 다르다. 도대체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일까.

젊어 진보이기를 꿈꾸었고 늙어 그럭저럭 보수가 되었다. 보수가 정권을 오로지 하고 진보를 탄압하는 것을 보고 너무 심하지 않을까. 숨 쉴 틈은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진보가 안쓰러웠고 불쌍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진보와 보수가 자리를 달리하고 보니 이건 완전히 씨를 말리자는 심사인지 죽어라 패고 또 팬다. 보수가 진보를 탄압하던 때의 방법, 때리며 질시하던 방법, 똑같은 방법으로 아니 그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이게 소련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가 평생 의아했던 문제다. 왜 똑같이 혁명운동을 하던 사람들 - 스탈린, 트론츠키, 브하린, 레닌. 그런데 그들이 권좌에 앉는 순간 동료들을 헐뜯고 모함하고 배신자, 인민의 적으로 몰아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반추하며 풀지 못하는 문제로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 사유의 문제였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일련의 사건들 - 권토중래하며 고군분투의 과정을 거쳐 권좌에 앉는 순간 적의를 품고 난자질하는 꼴들이 무섭고 불쾌해 진보의 길에서 슬며시 보수를 넘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보수로 돌아섰다.

기실 나와 같이 가진 것 없고 빽 없고 흙수저들은 보수의 편을 들것이 아니라 진보의 편에 서야 마땅할 것 같다. 시장을 자유 방임 상태로 둘 것인가 정부가 개입해 조정할 것인가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갈린다. 아예 정부가 시장을 몽땅 접수하면 공산주의다. 시장방임주의, 세금도 안 걷고 복지도 전무한 시절이 부르주아 자본가들을 길러 기업에 윤이 나도록 팽팽 돌아 일로 매진하던 그래서 빈부의 격차가 심해졌고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여”하는 보수보다는 그래도 세금폭탄이라도 두드려 복지정책을 왕창 펴 중남미의 부도난 나라들을 따라가더라도 가난한 국민들 살려보는 것도 괜찮은 정책이지 싶다. 이렇게 잘 알면서도 가난한 나는 빽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 곳이 진보인 줄 알면서도 보수의 편을 들고 보수가 지면 약이 올랐다. 정책까지 싫었다.

옛날, 추운 겨울밤, 굶주린 늑대들이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산골마을. 이 마을에 젊은이들이 정착을 한다. 처음 정착하는 날, 동네 주민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늑대에게 고기를 내어주지 말라는 당부를 받는다. 한밤중, 시장에서 마차를 타고 귀가하는 중에 늑대들과 마주친다. 살벌한 늑대들이 두려워 시장에서 사온 고기를 떼어준다. 그 고기를 물고 뜯는 중에는 조용했다. 그러나 고기가 떨어지면 다시 달려든다. 하는 수 없이 집에 당도할 때까지 고기 모두를 내어주고 귀가했다. 다음부터 동네 사람들은 늑대들에게 심한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고기 맛을 본 늑대들이 밤에 사람만 만나면 고기가 나오는 줄을 알아 버린 것이다. 며칠 후 그들은 부락민들에 의하여 쫓겨나야 했다. 부락민들의 늑대로부터의 안전을 해한 죄로. 어느 퇴역 육군 대령의 수필이다. 햇볕 정책에 대한 완곡한 경고의 메시지다. 이게 최근에 일어나는 북핵을 예고한 이야기가 아닌지. 꼭 보수의 정책이 좋고 진보의 정책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IMF로 전 국가를 위기에 빠트린 보수도 있었으니.

보수 편향으로 교육을 받았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는 물론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적 시류였을 것이다. 미국에선 매카시란 괴물이 나와 전 국민을 떨게 한 마녀 사냥식 공포를 일으킨 시대도 있었으니 우리나라만의 오류도 아니다.

이 지독한 이념의 극한에서 우리는 아직도 헤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물 건너간 이념 논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곳. 한반도밖에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도 베를린의 장벽이 붕괴되고 소련이 민족국가들로 각각 쪼개지면서 끝났다. 도대체 JSA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지. 10여 년 전 거기 가본 적이 있다. 외국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 신기한 나라, 이 기괴한 지역에 관해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시대가 변했는데도 원시 사고방식에서 헤나지 못하는 이 후진국을 어찌 생각했을지.

읽기만 해도 소지하기만 해도 빨갱이로 몰려 영어의 몸에 이르기까지 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이젠 지천에 깔려있어도 읽는 대학생이 없다. 요즘 그거 탐독해 좌경화하려는 청년도 없다.

옛날 의식화 교육이며 춘투를 벌인 대학생들이 장차관의 아들들이었으며 내로라하는 갑부의 딸들이었다. 이 영민했던 청춘들이 몇 년 후 기성세대가 되고 또 다른 청춘들이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어 세대를 갈던 역동적인 시대가 있었다.

언젠가 식당에서 청년들이 서빙 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해

“왜 너희들이 여기에 있지. 광산이나 농장, 건축현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울퉁불퉁 불거진 근육을 자랑하며 힘찬 노동을 해야 마땅한 거 아냐.”

꾸짖다가 엉뚱한 내가 열렬히 분개한 적이 있다. 요즘 대한민국의 젊은 야생마들은 순한 양이 되어 식당이나 카페에서 행주치마 두르고 셰프 백종원의 신도들이 되어 가고 있다. 봄이면 최루가스를 뒤집어쓰던 춘투도 사라졌고 체게바라 셔츠로 거리를 활보하던 열정도 사라졌으며 아침마다 물 초롱으로 온 동네 물 길어 나르던 투명하도록 맑고 싱싱했던 젊음도 사라졌다. 청와대에 근무했더라면 그 참모들처럼 똑같은 행위를 하고야 말았을 나약한 인간 하나 사라져간 일생을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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