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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와 강변칠우>여강은 알고 있다. 강변칠우 사건 그 내막 - 마지막회

<여주와 강변칠우>여강은 알고 있다. 강변칠우 사건 그 내막 - 마지막회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8.01.0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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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무리하면서

 

성흥환(전 한국문인협회 여주지부장)

맹자는 일찍이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선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산다는 자체에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고 거기에 죄악이 따른다.

계축옥사(癸丑獄事) 역시 욕심에서 출발한 정쟁(政爭)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살기위한 욕심에서 박응서는 거짓 고변(告變)을 하였고 이이첨은 대북당의 정치적 기반을 굳혔으며 광해군은 정권 유지의 역량을 과시하였다.

적서차별(嫡庶差別)이 없는 평등사회를 염원하던 강변칠우들은 자기 주장을 내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공양미(供養未)를 대신해서 몸을 던진 심청이의 마음도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뭔가?

활빈당(活貧黨)은 못되더라도 도둑떼도 아닌 역적 무리라니 해도 해도 너무 큰 누명을 씌워 주었다. 그러나 권간(權奸)들이 당권을 위하여 너무 큰일을 저질렀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피를 보였다.

아! 슬픈 일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업보(業報)로 맴도는 영이(靈異)한 조화(造化)를 가지런하게 정리할 수 없는 것도 인간이기에 말이다. 여주 능북 양화천 언덕에 칠우들이 모여 시가를 읊으며 적서가 평등한 꿈을 갈구하던 광해년간(光海年間)은 거의가 정쟁과 역모사건이 많은 시대로 볼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광해군은 이런저런 기록으로 봐서 소심하고 눈물 많은 군자처럼 느껴진다. 그저 권간들만 아니였다면 하는 아쉬움에 필자의 마음은 왠지 그렇다.

오늘날 대통령 탄핵 정국의 현실을 보면서 문득 폐주 광해군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다시 한 번 반추(反芻)해 볼만한 역사적 교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덮어진 갈피갈피를 필자가 들척여 거명된 칠우들의 원혼과 등장인물들의 영령에 명복을 빌면서 어수선한 상상(想像)의 봇짐 풀어 고스란히 여강물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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