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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의 자주 자주의 지혜

순간순간의 자주 자주의 지혜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7.09.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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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경(여주심리상담센터장)

어제 어느 한 중학교를 다녀왔다.

마침 방학이 끝난 다음이라 다소의 어수선 함도 있으나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나 일상을 묻고, 또 2학기의 준비를 위해 바쁜 모습들이다. 아이들 모습에 여전히 공부에 대한 중압감들을 푸념한다. 학교가 공사를 해서 좀 더 쉬었으면 좋겠다는 등의 나름의 이유들을 찾는다.

문득 웃음이 났다. 입속에서는 나도 저랬었는데 싶어 잠시의 생각에 잠겨 본다. 정말 학교가 싫고 공부가 싫어서일까? 그보다는 해야 한다는 무게감, 즉 부담감으로 인해 마음이 힘든게다. 그럼 전혀 공부와 담 쌓은 아이 역시도 하지는 않으나 불편한 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는게 싫은 까닭일 수도 있다. 우리는 왜 공부에 대한 일상적인 말을 하게 되는가? 이것을 역으로 아이들에게 물어 보면 “돈 많이 벌어서 잘 살라구요.”내지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지요 등 누군가에게 익숙하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로 생각한다. 슬픈 일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시절을 보냈지만 사실 마음이 안타깝다. 

최근 나는 나의 지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론, 지식을 배움은 사람의 행동과 선택의 근거를 알기 위해 하는 즉 원인과 근거를 알고 배우기 위함인데 우리는 과정에 목적을 심어 두었다. 많이 알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잘 할 것이라는 왜곡된 신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게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는 일반적인 말들을 사용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있는지 모르는 채 그저 흘러 내려오는 법칙처럼 하고 있다. 

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지적 능력이 사고의 능력에 영향을 주고 좀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해 내는 아이들은 이해 능력이 더 좋은 경우의 비율이 높다. 하지만 여기에 좀 더 큰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마음심(心)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과 이론을 안다 할지라도 마음의 가라지가 엉뚱한 질투나 탐심(貪心)으로 행하게 되면 이는 무지함보다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왜 하는 것인지를 알려 줄 때, 지식으로 원인과 근거를 이해하고 실천으로 자신의 행동을 알고 살아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한다. 

사실 행함, 행동의 선택이 모든 것의 결정이라 여겨도 무방하다. 안다하여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쓸 데가 없다. 즉 쓸데가 없다는 것은 비었다는 말이고 비어서 말로 하는 것은 형식임으로 지식은 실행의 학습을 도와야 한다. 앎에도 하루아침에 이러한 마음이 행해지기는 누구나 어렵다. 그래서 제안하는 한 방법은 순간순간, 자주 자주의 모드를 이용해 보는 것이다. 

우리들은 지식이 부족해서 힘겹기보다 알고 있는 것을 어느 순간에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 부터라도 오른 손 잡이가 왼손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어색하고 불편한 과정을 겪듯이 자신의 행동방식을 바꾸기 위한 순간순간, 자주 자주의 전략변화를 가져보자. 인간의 행동은 나침반처럼 움직이는 것임으로 방향을 잡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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