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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와 강변칠우>여강은 알고 있다. 강변칠우 사건 그 내막⑫

<여주와 강변칠우>여강은 알고 있다. 강변칠우 사건 그 내막⑫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7.09.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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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구 김제남이 사약을 받다

 

성흥환(전 한국문인협회 여주지부장)

이제 대북파 이첨당은 짧은 기간에 먼 길을 돌고 돌아 목전에 도달하여 활을 겨누었다. 

[여러 역적의 공초가 부계가 합치듯이 들어맞는다. 반역을 모의한 진상이 이러하여 다시 의심할 나위가 없으니 국문하는 것이 법으로는 당연하고 삼사의 논의가 진실로 옳다. 다만 ‘쥐를 잡으려고 돌을 던지다가 독을 깨뜨릴까 두렵다’는 옛말이 있어, 차마 내가 고문하지 못하나 조정의 논의도 엄하니 사사(賜死)하여 공의에 답하도록 의금부에 전교하라.] 하였다.

형방승지 권진이 짓고 전교하기를, [역적의 괴수 김제남이 모의를 앞장서서 주창한 사실은 여러 역적의 공초에 낭자하여 이미 다 드러났으니 일각도 천지사이에 살려 둘 수 없다. 

역적을 다스리는 대의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엄한 것이니 차꼬나 도끼와 작두는 바로 이 무리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리라. 여러 역적의 괴수는 서양갑이지만 김제남은 또 양갑이의 우두머리가 된다. 양갑이의 머리가 이미 베어 달렸는데 제남의 몸둥이와 사지는 아직도 온전하게 있으며 무릇 혈기를 가지고 있는 자로서 마음이 아프고 뼈가 저리어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깔고 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난역의 무리가 어느 시대인들 없으랴마는 그 흉악한 모의의 정상이 이 역적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감히 양갑 등과 함께 안팎으로 서로 내응하여 한 몸이 되고 음모와 비계는 귀신도 그 단서를 추축할 수가 없었다. 국구의 몸으로서 앞장서서 역적모의를 주창하였으니 춘추의 대의로서 논단 한다면 사람마다 이를 죽일 수 있다.

반역은 천하에 대악이요 인신무장이라는 말은 춘추에 나타나 있고 부도라는 죄는 한나라 법에도 엄하게 다스렸는데 하물며 역적 우두머리가 되어 주창한 자임에랴?

애당초 무신년에 마음을 먹고 김직재의 변을 다행하게 여기고 계획을 오랫동안 쌓아 몰래 반역을 도모하여 서얼들의 무뢰배와 몰래 결탁하고 무부의 불평 불만자들을 모집하여 선왕의 밀지라고 속이고 대비의 권세를 빙자하여 영창대군을 임금으로 세우는 계획이 비밀스러워 예측할 수가 없었다.

화가 대궐 안에서 무르익어 변고가 조석에 달려 있었으나 다행이도 조종의 말없는 도움으로 흉악한 역적들이 죄를 받게 되었다. 모두들 김제남이 앞장서서 주창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김제남의 죄상은 여러 역도들의 공술에서 나타난 바 박응서와 서양갑 등의 서자들과 반역을 모의한 진상이 이리저리 들어맞고 비밀히 무뢰배와 결탁하여 나쁜 무부놈들을 모아 선왕의 밀지라 핑계하고 혹은 대비의 권세를 빙자하여 큰일을 저지르려고 하였으니 삼사의 논의가 진실로 옳아 그대로 둘 수 없어 극형에 처한다.] 는 전지를 내려 김제남은 서소문의 자기 집에서 어명을 받고 죽었다.

아! 이런저런 인생인가? 조용한 향촌에서 글을 읽던 진사 김제남은 딸 하나 잘 둔 덕분에 흥부네 박이 넝쿨째 굴러 내린 듯 임금의 장인이 되어 연흥부원군이라는 작호를 받았다. 그리하여 정치에 드러나지 않은 실력자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으니 이런 것을 두고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가 보다.

그러나 10년 권세도 없다고 했던가?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연흥부원군 김제남은 하루 아침에 된 서리 맞듯 사약을 한 대접 마시고 아주 눈을 감았다. 

계축년 6월 초하룻날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이 죽었다. 예조에서 마땅히 대비에게 부고를 올려야 하는데 판서 이정귀가 논핵을 당하여 나오지 않았다.

참의 유숙(柳潚)이 “제남이 역적 모의에 우두머리로서 국법에 의하여 사사되었으니 결코 대비에게 부고를 올리고 상복을 드릴 수 없다.” 하였다. 

그래서 참판 오백령(吳百齡)이 부고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논쟁을 하다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을 보고 말하기를, “제남은 설사 역적으로 사사되었을 지라도 대비께서 복상하는 것은 마땅히 정성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니 예조의 직책은 즉시 부고를 전해야 될 것인데 참의가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라는 핑계로 움켜쥐고서 올리지 않아 지체하고 있으니 미안스러운 일입니다.”하니, 덕형이 백령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대의 말이 옳소.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하자는 뜻을 빨리 들어가 아뢰면 내가 그렇게 하리다.” 하였다.

덕형이 수의하기를, [부자의 천륜과 군신의 의리는 모두 삼강에 관계되니, 제남이 비록 역적의 괴수로서 종묘와 사직에 죄를 지었지마는 대비의 천륜으로서는 마땅히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유사에서 부고를 전하고, 상복과 소찬을 드리며, 조정에서 한 번 문안만 하면 변시의 예법에 합당할 듯 합니다. 대개, 춘추에도 자식이 어머니를 원수로 대하는 의리가 없으며, 옛 선비의 정론에 또 ‘자식이 어머니와 천륜을 끊는 도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변시에 처할 바도 이에 벗어나지 않사오니, 상재를 바랍니다.] 하였더니, 전교하기를, [제남이 이미 역적의 괴수로서 죄를 얻어 법에 의하여 사사되었으니, 대비의 복상하는 일도 강등하는 절목이 있을 듯 하오마는 끄트머리에 <천륜을 끊느니>운운하는 말은 이 논의에 있어서는 군더더기 말 같아서 나는 놀랍고 괴이하오.] 하였다.

그 뒤 얼마 못가서 천륜을 끊는 운운 때문에 덕형이 대간의 비평을 거듭 받고 벼슬을 깎아 내치어 양평으로 물러가서 날마다 산에 올라 북쪽을 향하여 통곡하다가 분하고 원망스러워 병이되어 죽었다. 그리고 참판 오백령은 탄핵을 받고 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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