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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빅토르 하라의 유령(el aparecido)

<음악칼럼>빅토르 하라의 유령(el aparecido)

  • 기자명 박관우 기자
  • 입력 2017.09.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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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여주라디오 방송국장)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던 날인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국영방송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라는 방송을 계속 내보내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도 비가 내린다는 방송은 군부 쿠데타의 신호였고 자신을 지명한 아옌데 대통령을 배신하고 쿠데타군을 이끈 육군참모총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전투기로 대통령궁인 모네다 궁을 폭격하고 전차와 보병으로 둘러싸고 사격을 가한다. 

마지막 순간 경호원들과 같이 싸우던 아옌데 대통령은 동료들에게 투항하라고 지시한 후 자결한다. 그를 지지하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월드컵경기장으로 끌려가 고문 받고 살해당한다. 

피노체트는 17년간 철권통치를 하며 반대파 수천 명을 죽이고 수십만 명을 연행해 고문했다. 칠레의 유명가수이자 노래운동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의 기수였던 가수 빅토르 하라 또한 기타를 치던 두 손이 부러진 채 5일 만에 40발의 총알을 맞은 주검으로 철길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의 음반은 모두 불태워진다. 

오랜 외세의 지배아래 있던 칠레의 예술인들은 1960~70년대 외세에 대한 자존감을 찾기 위한 문화운동으로 민속음악의 뿌리찾기와 보존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운동을 벌인다. 자신들의 문화의 뿌리가 스페인 등 유럽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잉카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각성을 한 것이다. 마치 민족적인 자존감을 찾기 위해 벌어졌던 우리나라의 70년대 탈춤부흥운동의 모습과 흡사하다.

사이몬 앤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 또한 이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을 통해 민속악기와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음악이 활발히 만들어지는 중심에 빅토르 하라가 있다. 그의 음악은 칠레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었다. 그의 음악 가운데 체 게바라에 바친 유령(el aparecido)은 이후에 칠레 전통음악 그룹 Inti Illimani와 Quilapayun 등에 의해 다시 연주되고 있다. 1980년대 우리나라도 빅토르 하라의 Venceremos(우리 승리하리라)가 노농동맹가로 번안되어 대학가를 중심으로 불리기도 했다. 

 

언덕 사이로 작은 길을 열어 바람 속에 발길을 남겨라
독수리 날개로 날아오르면 침묵이 당신을 덮는다
추위에도 불평하지 않고 지쳐도 불평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이 당신의 발길을 느끼고
장님처럼 뒤를 쫓는다. 

당신은 다시 한번 죽었지
황금 발톱을 가진 까마귀에게 십자가에 못박혔지
권력자의 분노에 반란의 아들이여
그들이 당신을 쫓고 또 쫓는다
당신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당신을 죽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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