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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아라파트와 쇼팽의 장송행진곡

<음악칼럼>아라파트와 쇼팽의 장송행진곡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7.06.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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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방송국장)

희미한 그림자가 지평선 저 끝에서 오고 있다. 카메라는 최대한 줌인 하여 피사체를 잡는다. 공항 활주로의 아스팔트 저 끝에서 군악대는 쇼팽의 장송행진곡을 연주하며 오고 있다. 이집트 공화국수비대의 음악이 점점 커지면서 그 긴 활주로 끝을 향하고 있다. 낯설지만 엄숙한, 행렬이래야 관을 맨 군인들과 군악대가 전부여서 그 넓은 활주로와 비교될 수밖에 없지만 그 장면을 TV로 지켜보는 34살의 나는 장엄함에 숨이 멎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엄숙함으로 기억하게 만들다니...

CNN은 며칠째 전 세계에 그의 죽음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에서의 장례식에 이어 아라파트는 그가 태어나고 활동했던 이집트에서 두 번째 장례식을 맞았다.

아라파트는 적에게는 테러리스트로 기억되지만 팔레스타인 민족에게는 위대한 독립지도자였다. 나라 잃은 팔레스타인 민족이지만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카이로에서 태어나 명문 카이로대학교를 나와 토목기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집트군 장교로 수에즈전투에 참가하고 1967년 이스라엘과의 중동전에서는 450여 명의 부대를 이끌고 1만5000명의 이스라엘군을 격파하기도 했다.

그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외교와 폭력을 병행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이끌면서 항공기 납치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살해하면서 악명을 높이기도 했다. 그는 UN에서 연설을 통해 ‘나는 한손에는 권총을, 다른 손에는 올리브가지를 들고 있다. 내 손에서 올리브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유명한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의 폭력적 지배에 팔레스타인 민족이 끝까지 독립을 위해 투쟁할 것을 천명하는 유명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하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영국은 2차대전으로 곤란을 겪을 때 하나의 땅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게 팔아먹었다. 강대국의 농간에 결국 조국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민족은 이스라엘의 혹독하고 처참한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웃 중동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돕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전쟁을 일으키지만 미국의 비호 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중동의 비극적인 역사가 대부분 팔레스타인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다. 어린 딸을 죽이지 말라며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사정하는 아버지의 사진은 전 세계 양심 있는 사람들과 중동국가들에게 피눈물을 삼키게 했다. 결국 어린 딸과 아버지는 이스라엘 군의 총에 죽었고 미국은 911테러로 보복을 받게 된다. 피의 역사 한가운데 민족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던 사나이 아라파트.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은 그를 위해 두 번째 장례를 치러주고 그의 시신을 팔레스타인으로 보낸다.

다시 쇼팽의 장송행진곡의 이야기다.

어릴 적 TV에선 유난히 디즈니 만화를 많이 틀어주었다. 꾀돌이 생쥐 톰이 힘센 고양이 제리를 골탕 먹이면 나오는 배경음악이 쇼팽의 장송곡이다. 톰과 아라파트가 음악으로 묘한 대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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