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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재활의학 전문의 우하정 연세새로운병원 부원장

<여주>재활의학 전문의 우하정 연세새로운병원 부원장

  • 기자명 이장호 기자
  • 입력 2017.04.03 14:55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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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여주를만드는사람들…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주는 것이 평등

   
 
 

“키가 170cm인 사람이 높이 2m의 담장 너머를 보려면 최소 40cm의 받침대를 주면 됩니다. 하지만 키가 150cm인 사람에게도 40cm의 받침대를 주면 담장 너머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같은 40cm의 받침대를 줬으니 평등하게 대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평등이 아닙니다.”
 

첫 만남에서 재활의학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우하정 연세새로운병원 부원장이 들려준 이 말은 취재가 끝난 한참 뒤에도 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 부원장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가능한 최대한도까지 회복시키는 재활의학과 전문의다. 전문의로서 그가 가진 평등에 대한 생각은 분명했다.
 

‘평등은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우하정 부원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이없이 사는 세상을 위해서는 누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판단할 수 있는 공정한 시각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하정 부원장이 지난 2001년부터 여주에서 재활의학 전문의로 일하다기 미국에 가서 근골격계 초음파와 통증에 대한 시술, 어린이를 위한 재활치료를 공부하고 다시 여주로 돌아와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우 부원장이 재활의학 전문의로 일하다가 유학을 떠난 것은 재활치료는 여러 분야가 서로 협력해야 하고 경제적인 도움이 많이 요구 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사회 보장 시스템이 우수한 나라에서 보는 것이 여러 가지로 도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 부원장은 미국 유학에서 사회적으로 학교에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많이 앞서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우하정 부원장이 재활의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청주의 한 맹아학교 설립을 도와준 사람이 미국 선교사였는데, 그 선교사는 양 하지(사람의 궁둥이에서 발에 이르는 부분)를 절단해, 인공으로 만든 다리(의지)를 착용한 채로 멀리 한국에 와서 맹아학교 설립을 도와주는 것을 보며 깊이 감명 받은 영향이 컸다고 한다.
 

우 부원장의 할아버지가 그 맹아학교의 교장이었고, 어머니는 그 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관계로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자랐기 때문에 전공을 선택할 때 자연스럽게 재활의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고.
 

요즘 우 부원장의 일과는 오전에는 병원으로 오는 환자들을 만나고, 오후에는 척수장애인을 찾아다니며, 보장구 제작과 진료를 보는 등 바쁜 일상의 연속이다. 우하정 부원장은 “재활의학과 여러 다른 분야 의료진과 협력을 통해 포괄적이고 다각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모두의 의견을 소통시키고 통합하여 함께 환자의 만족도 향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며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강조했다.
 

재활의학 전문의로서 특히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는 우하정 부원장은 “하나의 능력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능력별로 점수 매기고 줄 세우는 제도가 없어져야 한다.”며 “평등의 기준점이 비장애인이거나 무력으로 사람이 통제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소수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장애를 비장애의 다른 형태로 인정할 때 우리 모두가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우하정 부원장의 당연한 말이 새롭게 들리는 것은, 제대로 된 평등을 실천하는 세종인문도시 명품여주가 되기 위해서는 더 노력할 것이 많은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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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애 2022-04-03 19:34:27
선생님 저 기억 못. 하시겠죠
93년도에. 서울. 연세대학교 병원에서 근무하실때
석달동안. 입원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