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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3대째 서예 가르치는 한학자 사농(絲農) 전기중 선생

<여주>3대째 서예 가르치는 한학자 사농(絲農) 전기중 선생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7.03.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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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여주를 만드는 사람들⑤

22년째 무료 가훈·소원 써주며 봉사…한글 세종실록 작품전 전국 개최

“복잡한 과정 없이 새까만 먹으로 새하얀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단순한 과정이지만 서예(書藝)는 짧은 기간에 배울 수 있는 단순한 재주나 기예가 아닌 도(道)를 추구하는 서도(書道)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서당을 운영해 일반인에게 한학과 서예를 가르치고 있는 여주의 대표 서예가이자 한학자인 ‘경기으뜸이’ 사농(絲農) 전기중 선생(58)은 서예를 이렇게 정의했다.
 

문인 집안에서 태어난 전기중 선생은 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먹을 손에 묻히고 연필보다 붓을 먼저 잡으며 자랐다. 가학(家學)으로만 한학과 서예를 공부했던 전기중 선생은 20대 초반부터 초등학교에서 서예를 가르쳐 아이들을 대회에 입상시킬 만큼 뛰어난 지도력을 갖췄다.
 

지난 1988년 서당 ‘동구서숙’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 시작한 그는 1992년 경기도 서예대전 입선과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선, 2001년 경기도문화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2005년 서예로 대를 이어가며 한글 서예를 널리 보급하는 등의 공로로 ‘서예부문 경기으뜸이’로 선정됐다.
 

군대를 막 제대한 25살 되던 해 할아버지의 제자였던 성백효 선생으로부터 공부를 더해 보자는 권유와 함께 현재까지 사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선원 선생을 소개받고 본격적인 서예수업을 시작했다.
 

서예와 한학 공부를 계속 하면서도 결혼, 생계라는 현실 앞에서는 그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27살에 결혼을 한 뒤 30살 되던 해인 1988년 서당 동구서숙을 열기 까지 그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농사, 공사판 막일부터 외판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을 했다.
 

   
▲ 전기중 선생이 여주박물관 전통문화교육 강좌에서 전통서예 수업을 하고 있다.

지난 2014년 문을 닫을 때까지 26년간 오롯이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에게 서예와 한문을 가르치며 한 길을 걸어왔다. 지금도 학원은 없어졌지만 배웠던 제자들이 여강서학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청하고 있다.
 

글씨만 봐도 ‘사농 전기중 작품’이라고 금방 알 수 있는 한글서체를 만든 그는 여주시노인복지관 서예교실 12년, 여주박물관 전통문화 교육 10년을 비롯해 여주시장애인복지관, 이천 지역에서도 서예와 한문을 가르치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전 선생은 지난 1995년부터 여주도자기축제에서 처음으로 무료 가훈을 써주기 시작해 금사참외축제, 여주오곡나루축제 등 여주의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 국회의사당, 민속촌, 이천시청, 세종청사, 강천보, 장애인복지관, 강남 코엑스, 절 등 전국 곳곳에서 무료로 가훈 써주기, 소원 써주기 행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올해 새해 첫날에는 119안전센터를 찾아 뜻 깊은 소원 써주기 행사를 진행했다.
 

또 지난해부터는 ‘세종말씀 써주기’도 시작해 세종실록의 원하는 부분을 적어오면 정성스럽게 써주는 봉사를 하며 세종대왕을 모신 세종인문도시 명품 여주 문화 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수가 멋진 라이브 공연을 펼쳤을 때 관객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듯 서예가는 정성어린 글을 써줬을 때 그 글을 받은 사람이 감동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는 소원 써주기를 20여년 진행하다 보니 종종 그런 경험을 한다고 했다.
 

특히 몇 년 전 대구 동화사에서 살아갈 날이 얼마 안남은 반려견의 소원을 써 달라는 다소 황당한 제안을 받았지만, 흔쾌히 반려견의 극락왕생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했을 때 모든 가족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남는다고 회고했다. 서예가는 글을 통해 상생하고 소통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가훈 써주기, 소원 써주기 봉사는 평생 동안 이어갈 생각이란다.
 

그의 호 사농(絲農)은 출생지인 여주시 흥천면 ‘외사리의 농부’란 뜻이다. 대부분 성현의 호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신을 극도로 낮추고 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글 써주기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주저 없이 글을 써주다 보니 여주 곳곳에서 선생의 작품과 글을 만나볼 수 있다.
 

   
▲ 여강서학회 제자들을 위해 좋은 글귀를 써 주고 있는 사농 전기중 선생.

2005년 신륵사 박물관에서 제1회 개인전 ‘반야의 품에 안겨’를 열었던 전 선생은 소규모 전시회나 그룹전은 많이 열었지만, 개인전은 11년 만인 지난해 9월 훈민정음 반포 570돌 한글날을 즈음해, 여주박물관에서 멋스러운 한글로 세종실록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아낸 전시회 ‘이것저것 차이없이(無間彼此)’를 진행했다.
 

전시된 100여점의 작품들은 그가 10년 간 기획하고, 1년 여간 한 글자 한 글자에 심혈을 기울여 써내려간 서예 작품이다. 올해는 전국을 돌며 같은 전시회를 열어 성자(聖者)요 도인(道人)이며 문무겸전(文武兼全)인 세종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가르침을 세종인문도시 명품여주뿐만 아니라 곳곳에 널리 알린다는 계획이다.
 

전 선생은 “서예는 단순히 먹을 갈아서 글을 쓰는 재주가 아니기 때문에 서예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문(文)이 먼저 돼야 한다.”며 “인문학이 기본이 돼야 하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동양의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에 능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여주시문화원 이사, 여주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공동의장, 여주시사회복지협의체 위원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60세가 되면 모두 내려놓을 생각이다. 서예를 하는 한학자로서 60세부터 70세까지가 가장 황금기이기 때문이다. 그 황금기 만큼은 작품 활동에 집중하고 매진할 생각이다. 또 지난해 11년 만에 전시회를 했지만 황금기에는 2~3년 마다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전기중 선생은 “여주시가 문화 저변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요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시청사를 새로 지으면 무조건 1층에는 전시실을 만들고 지하 1층에는 공연장을 조성해야 한다.”며 “문화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주 많이 접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글을 통해 소통하며 여주시 문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 꾸준히 서예를 가르치며 서도(書道)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예(藝)를 넘어 도(道)의 길을 걷는 21세기 선비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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