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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Korean

No Korean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6.10.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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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성칠(여주시청 홍보팀장)
여행을 떠나는 일이 설레는 것은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의 어려움은 대상을 만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아하 그랬었구나.’하는 짧은 탄성에서 미래로 나갈 힘을 얻는다. 그것이 내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말이다.


부산항에서 대한해협을 통해 쓰시마로 향한다. 일본은 지금도 이 바다를 현해탄(玄海灘)이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해상 통로였다고 하는데 조선시대부터 현대사회까지 우리의 백성들이 흘렸을 눈물을 생각한다.


여주, 이천, 광주에서 도자기를 만들며 예술혼을 불살랐던 도공들, 이 땅의 끝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왜구에 손에 잡혀갔던 남녀들, 일제강점기와 태평양전쟁으로 군인, 노역, 위안부로, 혹은 조국을 떠나 미국이나 남미로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난 사람들.


어떤 사람은 창밖을 보았고,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고, 오랜만에 만난 듯 술잔을 기울이며 왁자지껄하다. 몇 번 이를 제지하던 앳된 여성 승무원은 사라졌다. 깜빡 조는 사이 배는 히타카츠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10여년 전에는 쓰시마에서 ‘고향의 봄’을 틀어줄 정도로 한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예전과 다르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저녁을 먹고 이즈하라 도심을 둘러보았다. 좁은 도로와 수로는 깨끗했다. 몇몇 음식점과 주점에 No Korean이 붙여져 있었다. 섬뜩했다. 관광객의 90%가 한국인인데 한국인을 거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아침에 깨어보니 비가 내렸다. 약속시간이 남아 쓰시마시청에 들렀다. 출근하던 여직원은 친절하게도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시역소(市役所)란 간판이 낯설었지만 청사모습은 우리와 비슷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가끔 수염을 기른 공무원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다음 코스는 면세점이었다. 가이드는 사야 할 것과 사지 말아야 할 것을 설명했다. 쇼핑이 끝나고 더위에 그늘을 찾아 면세점 옆으로 나갔다. 옆 서점 입구에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서점 여주인은 화가 잔뜩 나 비켜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늘 때문에 서점 앞을 막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사라지자 또 다른 한국인들이 막아선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기념비가 있는 수선사(修善寺)로 간다. 차도도 무시한 채 줄지어 가는 사람들을 향해 차가 경적을 울린다. 운전자들은 하나 같이 불쾌한 표정이다. 이곳은 좁고 민가가 밀집되어 조용히 해달라는 가이드의 당부는 잠시 뿐 시끄럽게 떠든다. No Korean이란 표시가 왜 붙어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최익현은 환난신고로 점철된 삶이었다. 포천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양평의 이항로 문하에서 공부했다. 스물세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부정부패 척결과 위정척사운동에 앞장섰다. 의병을 모집하여 조직적인 대처를 하려하였으나 황제의 명으로 해산하면서 체포되어 일본에 의해 대마도로 유배된다. 3년간 머물다가 단식으로 숨을 거둔다.


조선통신사 비(碑)도 있다. 임진왜란 전 조선의 운명을 바꾼 두 사람의 이름도 보인다. 붕당으로 현실을 왜곡해 나라를 어려움에 빠지게 한 그는 지금도 후손으로부터 존경받는 학자다.


한 사람은 올바른 나라를 위해 순국했지만 추앙받지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파당행위로 나라를 위험에 빠트렸지만 문중의 제사를 받는다.


대마도를 떠나면서 여행의 피로보다도 상념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경제여건을 가졌지만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우리들, 경제적으로 도움은 되지만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는 일본, 무엇이 두 나라를 다르게 만드는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지식을 습득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과거보다 좀 더 나아지려는 노력일 것이다. 부산항에 도착하자 ‘볼 것 없다’며 우르르 몰려나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천천히 가지도 못하고 밀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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