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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우리는 반동도 빨갱이도 아닌 양민이다 ①


6.25 전쟁당시 여주지역에서 247명의 민간인이 북한 인민군에게 반동이란 이유로, 남한 군인과 경찰에게 국민보도연맹이(빨갱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희생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이 없이 지금 우리시대에 잊혀진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치부되고 있다.
여주신문은 민간인 학살 사건을 잊지않기 위해 여주시 유족회의 자문과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4회에 걸쳐 기획시리즈로 보도한다.[편집자 주]


-6.25 전쟁 때 무슨 일이 있었나?


▶1950년 6월25일 북한 공산군이 남북 군사 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으로 남침함으로써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북한군들은 남한을 점령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경찰과 군인, 공무원, 지주 가족을 인민재판을 통해 학살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쪽 주민들을 보리 한 되로 유혹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이들은 인민군이 뭔지 모르고 한 끼를 채울 식량을 받기 위해 부역에 참여했다.


1950년 9월28일 서울이 수복되면서 피에 보복이 시작됐다. 6.25 전쟁 당시 여주에서 반동과 빨갱이로 몰린 양민 247명이 학살됐다. 특히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이유로 혐의자 및 그 가족들이 제6사단 소속으로 추정되는 국군, 여주경찰서와 그 지휘를 받는 각 지서·치안대에 의해 여주초등학교, 가남지서 뒷산 등에서 집단총살 당했다. 또한 수많은 양민들이 북한으로 압송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가남면 가남지서 뒷산 사건

   
▲ 가남에서 민간인 학살 장소로 추측되는 가남지서 뒷산.

▶인민군이 여주를 점령하자 가남면과 각리에서 인민위원회가 구성됐다. 면 인민위원장은 이두영으로 위험에 처한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줘 인민군 점령기 동안 가남면의 우익인사들의 피해는 적었다. 그

러나 국군이 다시 수복 후 복귀한 가남지서 백모 서장의 지휘 아래 박모씨를 중심으로 치안대가 조직돼 부역자 색출 및 연행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역혐의를 받던 주민들은 박모씨의 지시를 받은 치안대원들에 의해 가남지서로 잡혀갔다. 당시 태평리 인민위원장이였던 이필영과 그의 동생들, 가남국민학교 교사였던 정단리, 유창근과 그의 가족, 가남국민학교 교사 정범석·정의석, 정호진, 김순창, 간병운 가족 3명, 김문환, 이택기, 김태영, 김호진과 아들 김한영·김한걸, 김정진의 처, 정광철, 이용근이 가남지서로 연행됐다. 당시 치안대로 활동했던 김모씨는 태평리 인민위원장 이필영, 김순창이 가남지서로 잡혀가는 것을 목격했다.


가남지서로 잡혀온 주민들은 지서 앞에 소방장비를 보관하던 16.5㎡(5평) 크기의 소방서 창고에 갇혔다. 치안대 김모씨는 소방서 창고 안에 태평리 주민 박용식과 이필영 형제들이 갇혀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1950년 10월께 소방서 창고에 갇혀 있던 100여 명의 주민들은 주로 치안대에 의해 태평리 공동묘지와 가남지서 뒷산(현 태평터미널 뒤, 태평근린공원 입구) 폭탄 구덩이에서 총살당했다. 가남지서 유치장에 끌려간 주민들 중 훈방되거나 풀려나온 주민은 없었으며, 여주경찰서로 이송된 주민들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건 후 가남지서 뒷산의 시신은 발굴돼 이장됐으나 어느 곳으로 이장되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금사면 옹기정, 계신리 강변(흥천면) 사건

   
▲ 민간인 100여명이 사살된 곳 중 하나인 금사면 옹기정 뒷산.


▶전쟁 전부터 금사면에서는 외평리가 좌익 활동이 강했다고 알려져 있다. 외평리에서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좌익 활동을 하던 집안사람들만 품앗이를 했으며, 이에 가담하지 않은 주민들은 품앗이를 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참고인 박치정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외평리 주민들이 경찰의 감시를 집중적으로 받았으며, 경찰서에 끌려가 보도연맹에 가입하라는 압력을 많이 받았다는 진술이 이어졌다. 진실규명대상자 박신득은 1950년 초 마을회의에 나가 단지 도장을 찍었을 뿐이었는데 보도연맹에 가입한 것이 돼 버렸다. 한편, 전쟁 전 금사면 외평리 대한청년단 단장은 박치형이었으며, 훈련부장은 참고인 박치정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금사면 이포리 주민 최병화, 최영창, 김성한 등이 보도연맹사건으로 여주읍 교리 건지미 골짜기에서 제6사단 군인과 경찰에 의해 희생됐다. 9·28수복 후 최모씨, 오모씨 등을 중심으로 이포지서 산하에 치안대가 조직됐다. 이들은 부역혐의를 받아 치안대에게 연행된 주민들을 면사무소 옆에 있던 임시 유치창고와 지서장 사택 지하에 감금했다.


이포지서 유치장에 감금돼 있던 100여 명의 주민들은 옹기정 뒷산 공동묘지와 금사면에서 여주경찰서로 가는 길목인 흥천면 계신리 강변에서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능서면 고령토 구덩이 등 사건

   
▲ 4살 아이까지 살해됐던 능서면 왕대리 고령토 구덩이.

▶인민군 점령 당시 능서면 용은리에서 홍순국, 홍순대 등 2명이 인민군에 의해 희생당한 일이 있었다. 능서면 매류리에 일제강점기부터 고령토를 실어 나르기 위해 기차가 다녔으며 기차역 옆에 여주경찰서 매류출장소가 있었다. 국군이 여주지역을 수복하자 매류출장소 옆에 있던 창고를 임시 유치장으로 사용해 부역혐의를 받던 주민들이 갇혀 있었다. 사건 당시 10살이었던 매류리 주민 고정학은 심부름을 하면서 감옥 모양의 창고에 갇혀 있던 마을 주민들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1·4후퇴 직전인 1951년 1월 초 새벽에 치안대 등이 유치 창고에 갇혀 있던 주민들을 끌고 나가 고령토 구덩이에서 총살한 후 구덩이에 유기했다.
 

참고인 고정학은 매류역에서 근무하던 형으로부터 새벽 4~5시께 갇혀 있던 주민들이 모두 끌려가 총살됐다는 증언이 있다. 1960년도 고령토 구덩이가 다시 파졌을 때 수십 구에 이르는 유골이 나왔으며, 파진 유골은 고령토 구덩이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공동묘지에 수습됐다. 전쟁 후 마을로 돌아왔을 때, 전쟁 전의 마을 주민 상당수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치안대 감찰 허모씨와 치안대원 인모씨는 1951년 2월18일 좌익분자라며 용은리 313번지에 피란와 있던 양평군 지제면 지제리 조문환(당시 55세), 원금이(여·당시 41세), 조인숙(여·당시 15세), 조기년(당시 12세), 조기윤(당시 8세), 조현숙(여·당시 4세) 일가족 6명을 당시 CIC대원들이 주둔하던 용은리 303번지로 연행 감금된 조문환은 허모씨 등으로부터 장작으로 항거할 수 없을 정도의 구타를 당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조문환 일가족은 총살 장소인 매류리 공동묘지 부근으로 끌려 가 M1소총으로 집중 사격당해 살해됐다.


-대신면 보통리 강변장풍리 골짜기 사건

   
▲ 170~180명의 부역자가 희생당한 것으로 추측되는 대신면 장풍리 골짜기.

▶국군 제6사단이 여주지역을 수복하면서 후포리 인민위원장 신재동이 천남리에서 국군에게 잡혀 총살당하는 등 대신면에서 희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국군이 북진한 후 대신면에서도 곽모씨, 신모씨 등을 중심으로 치안대가 조직됐다. 후포리에서는 부역혐의를 받던 신영학, 신윤학(마을에서는 신여재로 부름), 백응규, 신재동 부친, 최용근, 최복흥 등 주민들이 치안대에 의해 끌려가 대신면사무소 옆 창고에 감금됐다. 치안대 감찰부장 신모씨 사촌이 대신면사무소 창고에서 몇 백 명의 주민들이 가득히 갇혀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후포리 최용근은 국군 수복 후 어느 날 새벽에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연행됐다. 끌려가면서도 집안 식구들에게 “곧 돌아올테니 걱정마라.”고 했다. 1950년 9월30일경부터 치안대에게 끌려간 주민들이 처형당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희생된 곳은 주로 보통리 강변 송장웅뎅이와 장풍리 골짜기였다. 사건 당시 치안대 활동에 동원됐던 보통리 주민 김모씨는 국군 수복 후 부역혐의자들에게 연행돼 총살당했다.


증언에 따르면, 치안대 등이 연행한 주민들을 여주경찰서로 넘긴다고 하면서 끌고 나가 보통리 강변과 장풍리 골짜기에서 총살했는데, 하루에 22명까지 총살됐다. 당시 친인척들도 부역혐의를 받게 될 것이 두려워서 시신 수습을 도울 수 없었다고 한다. 장풍리 골짜기에서 170~180명의 부역자가 희생당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자문=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여주시 유족회
참고문헌=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여주지역추모사업 보고서】
 

 

여주신문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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