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최종편집:2024-04-24 14:35 (수)

본문영역

분노의 문화

분노의 문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6.09.09 13:43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추성칠(여주시청 홍보팀장)
문화는 생명처럼 끝없이 변화한다. 생성되면서 스스로 생로병사를 겪는다. 탄생도 불명확해서 어느 곳에서 왔는지, 누구에게서 출발했는지 모른다. 지금 유행하는 K-POP은 십여 년 전에 방영된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는 추정일 뿐이다.


지금 전 세계에 불고 있는 걷기열풍도 코엘료의 소설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경제발전 속도에 따라 유행하는 문화 중의 하나일 뿐이다. 마라톤, 자전거, 여행, 캠핑 등은 국민소득별로 시대적 조류에 따라 달리 유행한다.


지금 우리시대는 예전과 달리 분노의 문화가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헬조선’은 청년실업, 자살률, 외모지상주의 등 사회현상에 대한 표현이다. 그 근간에는 치열한 경쟁, 나아지지 않는 사회구조, 사라지는 희망에 대한 분노가 잠재되어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공화당후보인 트럼프의 약진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의 중심은 이제 영국에서 다른 나라로 이전하고 있다. 영국금융의 근간은 EU 체제에서 생성된 것인데 이민자들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탈퇴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트럼프 열풍은 결국 백인우월주의의 확대다. 아시아계, 히스패닉계의 증가는 결국 순수한 백인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그가 당선되면 미합중국이라는 근간을 흔들고 경찰국가로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다.


이 두 현상을 관통하는 것도 분노다. 중동국가에서 촉발된 이민자들은 영국, 독일, 프랑스로 몰려들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프랑스의 이슬람주의자는 이미 10%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들은 기독교와는 달리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루스베네딕트는 일본을 방문하지 않고 국무부의 요청으로 ‘국화와 칼’을 썼다. 일본이 제2차 대전을 일으키면서 가미카제(新風)로 더 크고 힘센 미국에게 목숨을 걸고 대항하는 민족성을 분석하였다. 하지만 원인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지하의 오적(五賊)은 권력에 대한 분노의 외침이자 1970년대의 부정부패에 대한 폭로다. 이로 사상계는 폐간되고 작가와 편집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로서 우리의 문제는 외부보다는 내부가 더 크고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백인에게는 옳고 흑인에겐 잘못되고, 기독교인에겐 적절하고 이슬람교도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부정(否定)하면 적(敵)이 되는 이해관계가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현실이 아닌 가슴속의 기준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개인도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국가 사이의 문화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는가. 우리와 가끔 마주하는 다문화나 이민족들에게도 이질감을 느낀다. 이 감정 한편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공존한다.


조상들이 가꾸고 보존했던 터전에 갑자기 서 있는 낯선 외국인, 그들이 우리의 집에서 활개를 치는 것을 보면서 인정과 불인정의 마음이 갈등한다. 밀려드는 중국 자본으로 변화된 제주도, 이미 중국인들이 30%를 넘어선 대치동.


신영복 선생은 긴 감옥생활에서 왕따를 벗어나는 과정을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다. 이에 이르는 것이 ‘관용’이라고 보았다. 영어(囹圄)생활이 끝나고 가슴에서 발까지가 더 머나먼 곳임을 알았다. 그에게도 분노는 있었겠지만 공부와 용서로 이겨냈다.


지금은 영국이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영국의 권력 상층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려는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300년 동안 단 한 번의 전쟁에서도 패하지 않은 이들은 개인보다 국가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