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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애국심

아주 작은 애국심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6.08.1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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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년섭(객원 논설위원, 저서 목화솜 모정, 고려대학교 졸업)
내가 태극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맞은 미술시간이었을 것이다. 태극기를 그리는 시간이었는데, 태극을 제대로 못 그려 직선으로 가로 지르고 파랑색 대신 검정색을 칠했던 생각이 난다. 옆의 친구와 똑같이 그렸는데, 선생님은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셨다. 지금까지 직접 태극기를 그린적은 없고 등사판으로 민 빈 칸에 색을 메워 행사용으로 사용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애국가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배우고 불렀겠지만 언제인지 전혀 기억이 없다.


월요일 아침, 조회를 설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제창하였겠지만 애국가가 4절까지 있고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후렴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한 참 후의 일이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 바깥마당에 깊지 않은 우물이 있었는데, 그 옆에 무궁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지금 기억으로 밑 둥 지름이 100mm는 넘었을 것 같다. 언제 없어졌는데 자연사인지, 일하는 분이 거추장스럽다고 베어 버렸는지 알 수는 없다. 그 당시 시골에서 무궁화나무는 그리 귀한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에 국기를 게양하고 현충일에는 깃 폭의 너비만큼 내려 조기를 단다. 내가 사는 시골집은 국기를 게양하기에 마땅치 않아 국기봉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가느다란 비닐하우스용 파이프를 3m쯤 되게 자르고 기둥에 못을 박아 그 못에 끼워 추녀 쪽으로 세우는데 바람에 흔들리니까 추녀에 굵은 철사를 구부려 매달아 깃봉을 고정하니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안한다. 그럴싸하다. 특허감이다.


아내가 서울에서 유치원을 운영하였는데, 철모르는 아기들에게 애국가를 4절까지 가르치는 건 무리였다. 요령을 부려 시간차를 두고 봄에 1절, 여름에 2절, 가을에 3절, 겨울에 4절까지 가르치니 1년이 지나면 모두 애국가를 4절까지 틀리지 않고 부르게 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며 애잔한 앤드 렌 싸인(Auld lang syne)곡에 맞추어 애국가를 부르던 우리의 거룩하신 선조들, 눈물겨운 조상들의 피 땀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었다.


안익태 선생이 독일유학 중에 애국가 곡을 작곡하였는데, 애국가에도 저작권이 있었는지 부인 탈라벨라 여사가 저작권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공짜로 애국가를 부르게 되었단다. 저작권 때문에 애국가도 마음 놓고 부를 수 없을 뻔했으니 아찔하다.


나라의 국가인데 애국가 작사자가 어느 분인지 미상이다.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定礎式)에서 부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죠션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존답세”가 지금도 애국가의 후렴으로 맥을 잇는다고 들었다. 윤치호 선생이 작사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는데, 말년에 친일 활동을 한 것이 빌미가 되어 ‘윤치호 작사’로 결정하려다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애국가의 작사자를 꼭 찾아내어 그 분의 업적을 기리고 존경심을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 때,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관중을 일으켜 세우고 애국가를 제청하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야구장에서는 경기 시작 전, 애국가를 제창한다. 경건함을 잊은 채 껌을 씹는 선수, 목을 돌리며 몸을 푸는 선수, 옆의 연인들과 장난치는 젊은이, 왜 TV 카메라 기자는 이런 흉한 모습을 찍어 내보내는지...


여주 시내에서 능서를 오가다 보면 길 양편에 흐드러지게 핀 무궁화를 볼 수 있다. 천남리 도로변에 몇 그루, 천남초등학교 교정 울타리에 몇 그루 무궁화가 있다.


서울이고 지방이고 관공서에 가서 무궁화를 본 예가 없다. 어느 관공서든 정원은 돈을 들여 잘 꾸며 놓았는데 국화인 무궁화는 심을 자리가 없었는지, 국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먹었는지, 무궁화 쯤 하고 지나치는 건지 국화(國花) 구경하기가 국화(菊花) 구경하기보다도 힘든 세상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단 한그루도 없다.


나라사랑의 정신을 담은 노래, 국기, 꽃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닌지 나부터 반성할 일이다. 이번 가을, 마당 양지 바른 곳에 터를 잡아 한 그루 심어야겠다. 웬만하면 아들 딸 손녀 손자 모두 불러 모아 기념식수를 하고 ‘아주 작은 애국심’을 자손들에게도 강조해야겠다.


조상께서 넓혀 주신 땅 덩어리 모두 중국에 빼앗기고, 그나마 반으로 갈라놓은 좁은 삶터, 정신 못 차리고 아옹다옹 세대별, 계층별, 사상별 등등 나뉘어 싸움질이다.


정신 차리고 잘 살아 보라고 부추기는 게 태극기요 애국가요 무궁화이건만 언론에서 국기 게양을 홍보하여도 국경일에 태극기 게양하는 집 볼 수가 없고 길가에 은행나무 벚나무는 지극정성으로 가꾸면서도 무궁화 심는 시장 군수 한 사람 볼 수가 없고 애국가가 울려 퍼져도 나 몰라라 경의를 표할 줄 모른다.


국가관을 고취시키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갖도록 국기 달기, 애국가 제창할 때 딴짓 안 하기, 무궁화 심기를 계도하였으면 좋겠다. ‘아주 작은 애국심’을 간직하며 나라 사랑하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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