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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돌

깨돌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6.04.0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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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국 (객원 논설위원, 현대수필가로 등단, 수필가)
유리병 속 깨돌을 들여다본다.


이십여 년 전 보길도 흑사해변에서 가져온 검고 작은 돌이다. 그해 가을 친구와 부부동반으로 보길도를 다녀왔다. 흑사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아~ 깨돌!"


친구 부인이 탄성을 질렀다. 왜 깨돌일까? 돌이 깨알만큼 작아 그렇게 부르는 걸까. 무릇 돌이라면 바위까지는 아니라도 짱돌쯤은 되어야 하는데 이것들은 무게감에 비해 너무 작아 깨알로 격하시켜 그 앙증스러움에 붙여진 모양이다.


보길도에서 돌아온 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눈에 밟히느니 깨돌이었다. 왜 그런지 그 작고 까만 돌이 자나 깨나 떠나지 않았고 파도에 떠올랐다 가라앉으며 저희들끼리 부딪히며 내는 차르르 소리까지 들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다.


몇 달 뒤 아들과 같이 가서 몰래 슬쩍해 온 것이 이것들이다. 주민들이 가져가면 안 된다는 경고도 무시한 채 슬며시 부자(父子)가 도둑이 되어 훔쳐오고 말았다.


유리병에 담아놓고 수시로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모나지 않은 동글동글한 작디작은 돌이 요모조모 내어 보이는 품새가 여간 아기자기한 것이 아니다. 몇 년을 두고 보았다. 그러다 돌들에 미안해 보길도 흑사해변에 돌려주던가, 어항에 깔아 주어야 도리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길도는 너무 멀었고 동생 집에 커다란 어항이 생각나 동생에게 이 깨돌 어항에 깔면 좋을 거라고 하니 동생은 어항을 치웠다며 가져가지 않아 거실 한가운데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그것도 20여년이 지나자 자기들끼리 빈틈을 하나하나 치우고 차분히 가라앉았는지 꽉 채워져 하나 가득이었던 것이 아래쪽 1/4만큼 내려 앉아 빈 공간이 훤히 내다보였다. 깨돌끼리 모여 공백을 다져 여백을 만든 것이라 더 아름다워 보였다.


도대체 보길도 흑사해변에 이 작고 검은 깨돌이 왜 무더기로 쌓여있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어디서 어떻게 이곳으로 이 까만 깨돌을 모아 쌓아놓았단 말인가. 누군가 트랙터나 대형 중장비 또는 비행기로 실어 나른 일이 없을진대 이 까만 깨돌이 어떻게 그곳에 쌓여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미국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그랜드캐니언을 오가며 보았던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 정상마다 바위가 부서지고 삭아들어 그 자리에 그림자처럼 무너져 내려앉은 바위의 잔해를 봤는데, 가이드에게 묻고 싶어도 당연한 것을 묻는다며 핀잔을 할 것 같아 참았다.


남들은 그랜드캐니언의 찢어지고 갈라져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의 또 다른 세상을 밝히는 것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산봉우리에 그림자처럼 잦아든 바위덩어리의 잔해를 생각하고 있었다. 높은 산에는 틀림없이 커다란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로 인하여 비바람과 세월의 침식에서 산 정상의 높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 그 바위가 기나긴 풍화로 인하여 겉 그림만 남기고 주저앉아 그림자로 남이 있었다.


깨돌은 보길도 바닷가에 하나의 거대한 오석(烏石)이었을 것이다. 수십억 년 전 지구가 생겨나 화산 폭발이 있고나서 오랜 냉각기를 거쳐 보길도 바닷가에 웅장한 한 개 바위로 우뚝 서서 그 위용을 자랑했을 것이며 공룡의 질주와 익룡의 비상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런 지각의 변동이나 또 다른 폭발로 인하여 이 거대한 바위는 반 토막이 나고 더 깨어지고 부서져 깨돌로 까지 사그라지면서 대한항공, 스텔스, 비25전투기의 비행과 초호화 선박, 핵 항공모함의 항해까지 보았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확장해보면 달이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보길도 거석이 반 토막 나 하나는 달에 하나는 보길도에 남겨진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지구가 달과 가까워지는 만조 때, 또 다른 오석의 반쪽을 올려다보며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반쪽으로서의 분신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닐까. 지구, 보길도 흑사해변의 돌은 무수히 깨어지고 부셔져 작은 깨알로 바닷가에 흩어져 있지만 달 속의 오석은 지구의 1/6에 불과한 중력과 흐릿한 대기의 영향으로 아직도 튼튼한 한 개 바위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 늙어 사라져갈 위기에 직면한 육신의 반쪽이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있는 육신의 반쪽을 바라보는 감회는 어떠할까.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달 속에서 보길도 흑사해변의 떨어져 나간 오석(烏石)의 반쪽을 보았을까. 그의 스케치 중 직선이 잠시 주춤했던 자리가 혹시 그 오석은 아닐까.


깨돌의 나이를 생각한다. 보길도 오석이 지구의 탄생과 같다면 50억년. 인류의 출현은 겨우 20만 년. 까마득히 먼 훗날, 뒤늦게 나타난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고도 남을 핵을 만들어 장난을 치고 있다. 세계양차대전, 9.11테러, IS사태, 일제 36년, 6.25사변, 김정은의 수소폭탄, 사드배치와 테러방지법으로 떠도는 위기와 낭만의 갈피, 지중해를 떠도는 난민들…. … 이것들은 인간의 또 다른 풍화작용일까. 그런데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이 풍화작용은 왜 이리 모질고 아프냐.


유리병 속, 제 무게로 내려앉는 깨돌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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