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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의 6.25 참전 수기-잠들면 죽어!-⑨

김성래의 6.25 참전 수기-잠들면 죽어!-⑨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5.07.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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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래(대신면 율촌리)
■ 제 2 절 일개 군단이 후퇴하며


날이 밝아 모여 있던 20여명은 매봉산 하단 능선으로 후퇴하는데 인민군은 벌써 매봉산 하단까지 접수하여 소수병력으로 후퇴하는 우리를 잡으려고 “딱 꿍”하며 사격을 해 왔다.


딱꿍 소리를 내는 총은 인민군 개인화기의 특색 있는 소총이며 총을 쏘면 딱꿍 소리가 난다해서 딱꿍 총이라 했다. 이쪽 산에 오르면 이쪽에서, 저쪽 산에 오르면 저쪽에서, 딱꿍! 딱꿍하여, 앞산 뒷산, 오르락내리락, 이리저리반복하며 후퇴를 시도하다보니 정오가 다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연대 주력 부대가 후퇴하여 오고 있었다.


이때 분대장은 강 건너 취사장으로 가, 이제 멀리 후퇴해야 한다고 하면서, 혹시 생존해 후퇴하는 분대원을 만나면 분대원을 먹여야 한다며 밥 한 배낭씩 둘이 짊어지고 후퇴하는 대열 속에서 분대원을 찾기 시작하였다.


우리 중대가 오기 시작하면서 몇 명 남지 않은 분대원을 찾아 오로지 밥만을 지고 온 배낭을 열어 식사를 하게 한 후, 분대장은 모두들 후퇴하는 도중 낙오하지 말라! 멀리는 안동까지 갈 것 같다하며 낙오되지 말고 나를 따르라! 하였다.


전투에서 특히 육박전에서 용기와 투지, 동지애와 이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내가 살 수 있느냐가 문제다.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도 기술이다. 인간이전의 동물적인 감각. 나의 분대장과 같은 감각이 필요한 곳이 바로 전쟁터이다.


나는 분대장 덕에 살아남았다. 아직도 그를 전우애도 없고 자기 분대원들의 생명을 헌신짝 같이 버리는 치졸한 지휘관이요, 치사한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육박전을 치르면서도 우리 분대는 소대장과 위생병만 포로로 잡혀갔고 단 한 명의 피해자가 없어 크게 양심의 가책은 받지 않았다.


이리하여 오대산자락을 연대 병력이 아니라 전 사단병력이 혼합되어 오른다. 해지기 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 날이 새서야 겨우 능선에 오르게 되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미군 수송기가 보급품을 투하하고 있다. 능선을 타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산을 넘으면 계곡이고, 계곡의 냇물은 유속이 빨라 몇 명씩 어깨동무를 하여 간신히 건너고 나면 다시 산을 넘어야 한다. 이를 수도 없이 반복하다보니 먹지도 자지도 못해 지칠 대로 지쳐 쓰러졌다하면 잠든다. 기진맥진 뒤따라오는 전우가 흔들어 깨운다.


“잠들면 죽어!”


강제로 일으켜 세워 후퇴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후미에 따라오는 병력은 추격하는 적과 교전도 수 없이하며 후퇴하였다. 몇 날 며칠 밤낮 없이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고 후퇴만 하는데 수많은 병력이 도착한 곳은 북한강 상류, 넓은 버덩이다. 일부는 도하(渡河)하기 시작하였다. 뒤이어 후속 부대도 계속 강을 건너는데 나도 그 틈에 끼여 강을 건넌다.


그때였다. 강물에 돈이 널려 둥둥 떠내려갔다. 강 건너 산 능선에서 적이 떠내려가는 돈을 미끼로 우리를 향하여 기관총 사격을 하는 중이다. 사단 경리과에서 봉급을 미처 나누어 주지 못하고 더블 백[double bag] 에 넣어 메고 후퇴하던 중 이 강에서 적의 기습을 받아 돈 보따리가 물에 잠겨 헤어져서 강에 돈이 깔리며 떠내려 오는 것이다.

 

전쟁 후에 본 영화이지만 장 가뱅과 아랑 드롱이 나오는 이탈리아 범죄영화 지하실의 멜로디 속 마지막 장면과 똑 같았다. 은행에서 턴 돈 가방을 경찰에게 발각되기 일보직전에 급한 마음에 돈 가방을 수영장에 넣어, 가방이 물속에서 부풀어 터지면서 수많은 돈이 하나 둘 떠오르다 수영장 하나 가득 돈으로 꽉 채우던 바로 그 모습과 흡사했다.


대부분 이 돈에 관심은 없고 어서 빨리 강을 건너 적의 사정거리를 피해 살아남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런데 간혹 돈에 환장한 병사들이 이 돈을 주우려다, 고정 표적으로 삼은 적의 사격으로 여러 전우가 총탄에 맞아 떠내려가기도 했다.


겨우 도하에 성공한 병력이 모여 지휘관들이 후퇴 경로를 살핀 후 다시 걷기 시작하자 해는 떨어지고 어둠이 시작되어 야간후퇴를 하게 되었다. 밤늦게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가던 중 행렬이 멈추고 꼼작도 않으니 뒤따르던 장교가 앞으로 오며 왜 안가나, 왜 안가하며 독촉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장교가 앞으로 나가보니 한 병사가 전주에 기대여 잠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밤낮 할 것 없이 매일 후퇴 하다 보니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 졸면서 후퇴 하는데 무언가에 기대어지자 자기도 모른 채 그대로 잠이 들고 만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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