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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의 6.25 참전 수기-잠들면 죽어!

김성래의 6.25 참전 수기-잠들면 죽어!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5.06.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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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래(대신면 율촌리)
■ 제1장 6.25가 나면서 1편에 이어


며칠이 지나 유엔군 탱크 부대가 그곳을 지나게 되자 노인이 급히 뛰어나가 북진하는 탱크를 가로막자, 통역관이 왜 막느냐고 하니 노인은 자기가 본 대로 중공군이 무엇인가를 묻었다고 했다.

 

즉시 지뢰탐지기로 탐지해 보니 대전차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 저 멀리 우두산에 중공군이 많이 있다는 것까지 알려주니 고맙다고 하며 인적사항을 적어갔다. 추후 연락이 있을 거라 하고 탱크부대는 무사히 전진할 수 있었다.


휴전이 되었다. 미8군 사령부로부터 초청장이 왔다. 그러나 홍씨 노인은 서울에 한 번 가본 적도 없을뿐더러 미8군 사령부가 어딘지 찾아가지 못한다고 하니, 미8군 사령부에서 차량을 보내 홍씨 노인을 모셔 가 공로훈장을 수여 하였다. 만찬을 베풀며 홍씨 노인에게 소원을 물으니, 이 나이 먹도록 서울을 못 가 보았다.

 

서울 구경을 하고 싶다. 그럼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물으니 그 것만으로 족하다고 홍씨 노인이 말하였다. 그 때만해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풀리며 자기자랑 자기 치적을 내세워 한 탕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미8군에서는 큰 공적이라 홍씨 노인에게 사례하기 위하여 훈장 외에 다른 서류를 주며 언제든지 무엇이든 아쉬운 것이거나 도움을 필요하면 이 서류를 가지고 관계기관에 찾아가면 다 들어 줄 것이니 필요할 때 활용하라고 하였다.


그 서류는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했다. 주위사람들이 빌려가 이용하려하였지만 본인이 아닌 관계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몇 년 후 홍씨 노인은 죽고 이젠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이 수복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따라서 피신하였던 지역유지 여러분이 면사무소에 모여 자치제를 조직하였다. 보통리, 곽성영님이 주축이 되어 치안부서를 조직하고 면내 치안을 유지했다.


미처 후퇴하지 못한 빨갱이들과 인민군을 체포하기 위하여 조직된 수색조가 있었다. 수색조에는 국군 낙오병인 이상정씨를 중심으로 나의 형 김창선, 탁종성, 박원만 네 사람이 선발 되어 면내 빨갱이들이 은신할만한 곳을 찾아 밤낮없이 수색하여 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치안부서로 넘기면 면사무소 창고에 유치시키고 한 사람씩 심사한 후 적극 가담자는 공산주의자로 총살했다.


경미한 사람은 석방 시키면서 치안을 유지하는데, 우리 지역을 거쳐 인민군 잔류 병력이 많이 후퇴하였다. 그들을 체포하여 총살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나온 16, 17세의 어린 인민군은 지역 유지가 집으로 데려가 집안 식구처럼 보호하기도 하였다. 그가 수색조의 일원인 탁종성씨다.


지역 치안이 안정을 되찾아 농민들도 생업에 종사하며 어느 듯 가을이 다가와 추수를 마치고나니 압록강까지 진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터지고 말았다. 1· 4 후퇴가 시작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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