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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의 6.25 참전 수기-잠들면 죽어! ①

김성래의 6.25 참전 수기-잠들면 죽어! ①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5.05.2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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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래(대신면 율촌리)
<서언 >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흘렀다. 제2국민병으로 남하하고 경산에서 국군에 입대해 이등병으로 전투에 참가하며 수없이 생사의 기로를 헤맸다. 전우들은 수도 없이 전사했다.

6.25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참혹했으며 수 없는 인명을 앗아갔는지 목격했다. 이념의 양 끝 날(刃)에 서서 동족끼리 참담하게 죽이고 죽어간 대리전쟁으로 피폐한 나라가 이젠 제법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는 지구상에서 퇴색해 버린 이념으로 국내외에서 항상 분란이 들끓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 

 

이등병 출신이요 중학교 2학년 중퇴가 학벌의 전부인 나에게 이념이란 단어조차 낯설다. 다만 전쟁에서 치열하게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가면서 살았던 날들이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전쟁을 치룬 지난날들이 아무짝에 쓸모없이 퇴색해 가는 것이 허무해 이 글을 쓴다.

 ■ 제1장 6.25가 나면서


1950년 6월 25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오고 있었다.


농사꾼은 비가내리면 논물 관리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물 관리를 위해 논물을 보러 나가는데 북쪽 멀리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가까워진다. 이것이 북한이 남침하기 시작한 포성(砲聲)이다.
 

나는 나이 스무 살, 학생이며 농사꾼이다. 스무 살의 학생이지만 해방직후 어수선한 때라 제대로 된 학교도 없었고 학교를 제 때, 제대로 다니도 못했다. 몸은 장성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지만 중학교 2학년, 해방이 되면서 임세흥 교장 선생님이 월남해 후포리(여주시 대신면 소재) 야산에 중학교를 설립해서 시오리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다. 학교 건물도 학생들이 벽돌을 찍어 지어야 했으니 수업이 오죽했으랴.
닷새 후 논을 매려면 물고를 타 놓아야 한다. 논물을 빼놓아야 잡초를 쉽게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에 나가보니 초현리 삼거리 삼륜 오토바이에 무장한 인민군 세 명이 타고 주위를 경계하며 묻는다.


“동무 어데 가나?”


논물 빼러 간다고 하니 보내 주었는데 그 한 마디가 어찌나 무서웠는지 사시나무 떨듯 팔 다리를 덜덜 떨면서 물고를 열고 있었다. 부락마다 난리가 났다. 전쟁이 났으니 젊은 사람들은 몸조심하라고 어른들이 주의를 주었으며 닥쳐올 전쟁에 대한 공포, 듣도 보도 못한 공산주의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으로 좌불안석 불안에 떨었다.


동생네 논매기에 가보니 낯선 청년이 품 팔러 왔다며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서글서글하고 말과 행동이 시원시원해서 호감이 갔다. 면사무소와 지서(지금의 파출소)에서는 지방 좌익분자들이 치안을 담당 한다고 지방유지, 대지주, 국군 낙오병 색출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어느 날 밤 12시가 지났을까 초현리 산골짝 외딴집에서 총 소리가 났다. 동생네 논을 매던 사람이 국군 낙오병이었는데 그를 잡으려고 도망가는 그에게 총을 쏜 것이었다. 그는 체포되지 않고 무사히 탈출하였다.
 

내무서에서는 부락책임자인 인민위원장을 각 부락 마다 선출한다고 해서 저녁을 먹고 정미소 앞에 모여 김학면씨를 위원장으로 뽑았다. 그때는 한다, 못 한다 토를 달수도 없었다. 거절하면 반동분자라 낙인이 찍혀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시절이었다.


지금도 과거사 청산 운운하면 생선을 먹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달갑지 않고 껄끄러운 이야기들이다.
 

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순박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사람 공연히 완장 하나 채워 주는 날이면 도깨비감투 쓴 듯 악랄하고 비열해 졌다. 그것은 가랑잎에 불붙기 같아 하루가 멀다고 변해 버리는 것으로 필부필부들의 인지상정이었다. 단순히 한국 전쟁에서만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서도 똑같았다.


이제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도록 세월이 흘렀다. 좌익이고 우익이고 일제 앞잡이 건 독립투사 건 길게 잡아 사돈의 팔촌은 다 된 세상이다.


선출된 위원장은 책무를 다하여야 한다. 첫 임무는 전투중인 인민군 식사 제공이다. 집집마다 쌀 두 말씩 주먹밥을 만들어 지게에 짊어지고 인민군이 주둔한 북내면 오금리 앞산으로 가는데 쌕쌕이라고 하는 전투기가 공습을 하는 통에 밥 바구니를 짊어지고 산속에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가져다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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