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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이형우(53) 여주도예명장

<여주> 이형우(53) 여주도예명장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4.12.0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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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혼 황청자 위해 남은 인생 받칠 것”

▲ 국내 최대 크기 목단무늬접시를 설명하고 있다.

이형우 여주도예명장은 ‘황청자’라는 옛 도자기 제조방법을 복원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주목을 받고 있다.
도예인이면서 또 10년이 넘는 동안 여주시의 장애인들을 위한 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여주군장애인자립도자기공장 설립과 운영 등 많은 분야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여주신문은 물레를 멈추지 않는 이형우 여주도예명장을 만나 도자기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주]


젊고 참신한 인재는 여주도자의 역사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내 또래들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살아왔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농사를 짓거나 공장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는 17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인천에 있는 한국청자연구소에 취업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힘은 들었지만 봉급을 받고 기술을 배운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하는 나를 도자기공장에서 최고의 기술자인 대장이 잘 봤는지 극사(상감을 넣는 사람) 기술과 꼬박사를 하게됐다. 그리고 그에게 물레를 배워 입사 2년만에 중대장 일을 하게 됐다. 그리고 대장까지 승진해 6년동안 근무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도자기를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꼭 여주를 찾아 최상의 소지(도자기에 쓰이는 흙)로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1986년에 조평요업에서 일하면서 여주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인천과 달리 여주는 도예고장으로 연봉 3500만원의 고액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여주도자기가 호황을 누려 제품은 없어서 못 팔고 인력은 부족해 대장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1990년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용우도예방을 설립하게됐다. 여주의 가장 좋은 점은 도자기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술자들이 밀집한 지역이라는 것과 또 고려시대에 백자를 만들 정도로 도자기 원재료가 풍부한 지역이라는 점도 도자기를 하는 사람들에겐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천년 도자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여주는 나에게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여주도예명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작품세계를 펼쳐 가겠다.


-추구하는 도자기 작품세계는?

▶모든 도예인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특히 ‘무슨 도자기 하면 아무개 도예인’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분야를 만드는 것은 자신은 물론 도자기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도자기는 여려 종류의 흙과 유약을 조합해 다양한 도자기를 만들어 낸다. 나도 이런 저런 실험을 하고 공부하던 중 예전에 ‘황청자’라는 도자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황청자는 표면의 유약이 갈라지는 현상이 있는 것은 청자와 같은 점이나 빛깔은 청자 고유의 푸른색과 은은한 황금색이 섞인 신비로운 색을 내는 도자기이다.
 

도자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전통도자기에 종사하는 다른 도예가들도 천연재 유약 등 사람의 몸에 좋은 재료들을 사용한다. 내가 사용하는 황토유약도 그 한 분야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작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쌀항아리나 콩나물시루도 만드는데 어떻게 사람에게 좋지 않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을까?
 

도자기는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몸에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황토유약은 자연에서 얻어진 재료다. 우리 전통도자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무관하지 않게 만들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약만을 가지고 색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우리 전통 청자는 유약뿐 아니라 태토(바탕흙)의 색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약과 흙이 적절하게 어울려야하는데 여주는 대한민국 도자기계의 청계천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도예인들이 많고 흙과 유약을 만들 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은 여러분께 자문도 구하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황청자 복원을 성공한 것이다. 혼자서 공방에 틀어박혀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여주에만 있는 천년도자의 경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하우(knowhow)는 지역에서 도자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것이 여주도자기가 가진 특별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도제식으로 가업을 이어 온 전통도자기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이런 점들을 잘 살려 여주도자기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후원 등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보람이 있다면?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나도 내가 나중에 돈 벌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정오 센터장을 알게 되면서, 처음엔 끌려나오듯이 참여하다보니 어느새 내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러다보니 2002년부터는 장애인 후원회장을 맡게 됐고,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가장 보람된 것은 역시 장애인자립을 위한 도자기공장, 자조모임이 만들어지는데 나도 작은 힘을 보탠 것이다. 나의 작은 도움이 다른 사람에겐 큰 힘이 되는 것을 보면서 ‘봉사도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참 많다.
 

요즘 모두 경제가 어려워 힘들어 하고 있다. 특히 이번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더 추운데 이럴 때 일수록 어려운 사람들은 더 어렵다. 지금 주위에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면 조금이나마 따듯한 겨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물레를 이용해 접시를 만들고 있는 이형우 도예명장

-젊고 참신한 인재 육성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여주는 1990대 후반까지 도자기로 호황을 누렸다.
 

비싼 선술집에서는 공무원, 경찰들에게는 외상을 안 줘도 도예인들에게는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도예인들은 여주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고 항상 많은 현찰을 갖고 다녔기 때문이다.
 

당시 도자기공장이 밀집된 오학의 경우 전국에서 인구비례 가장 많은 중형차가 많은 도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주 도자기가 왜? 쇠퇴를 했는지 고민을 해야 한다. IMF영향도 있지만 고급 기술자들이 젊은 인재들에게 기술이전이 인색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도 그랬지만 도예인들 대부분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도자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대물림을 꺼렸다. 그래서 자식들을 대학을 보내고 회사원이나 다른 분야에 일을 하게했다. 이것이 젊은 사람들이 도예에 등을 돌리게 만들어 여주만의 도예 기술의 명맥이 많이 사라진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은 젊은 인재들은 많은 배움으로 지식과 인성을 갖고 도예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새로운 아이템과 여주만의 도예 기술을 접목한다면 옛 여주도자의 영광을 다시 찾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원로 도예인들이 인재 육성을 위해 노하우 전수는 물론 정착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줘야 한다.
 

도예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여주에서 창업을 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을 갖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들이 부담 없이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재를 위해 여주에도 임대공장 단지가 필요하다. 저렴한 월세로 젊고 참신한 인재들이 작품활동을 하고 원로 도예인들의 기술전수로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도예인들 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여주시에서도 미래를 투자한다는 선경지명을 갖고 도예인을 발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젊은 인재들이 줄고 도자기 명맥이 끊어진다면 우리 여주의 역사도 사라지게 된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인재들이 여주 도자 역사를 새로 쓰고 만들어 갈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도예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주가 세계의 도자메카로 성장하기 위해서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고 있는 작품이 전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자부심과 항상 노력하기 바란다. 하나 보다 둘, 둘 보다 셋이 더 큰 힘을 발휘하듯 우리 도예인들이 서로 화합하고 도우며 나간다면 분명 세계 최고의 도자 고장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를 위해 항상 노력하는 도예인이 되길 바란다.

사진/박도금기자 yeoju5@hanmail.net


◆이형우 도예명장은?
▶1962년 출생
▶2002년 중국 장가계시서법협회 감사장(문화예술교류)
▶2003년 주한 카나다대사관 특별공로패(문화예술발전)
▶2005년 경기도지사 표창(장애인복지)
▶2007년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장 표창(장애인복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공예문화 부문)
▶2011년 (사)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우수상(전통공예)
▶2013년 여주도예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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