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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대 여주목사와 군수

조선시대 역대 여주목사와 군수

  • 기자명 박재명(여주잠사민속박물관장)
  • 입력 2007.04.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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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7년부터 1908년까지 126명 -

조선후기 정조대왕 때부터 200여년간 여주목사와 군수를 지낸 명단(外案考)이 입수되어 이를 소개하면서 그중 이문원과 김가진 목사와 홍병덕 군수의 경력 등을 살펴본다.


이문원(李文源)목사는 두번씩이나 여주목사를 지냈는데 당시(1777년) 여주의 행정이 문란하여 조정에서 강직하고 뛰어난 인물을 선발, 이를 바로 잡도록 이문원을 목사로 임명한바 그 공적이 컸다한다. 현재 그의 공적비가 영월루에 세워져 있다.


1890년에 부임한 김가진(金嘉鎭)목사는 1877년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으로 1894년에 군국기무처회 의원이 되어 내정개혁에 참여했고 1895년 농상공부대신 1896년 중추원일 등 의관, 1900년 중추위원, 1902년 궁내부 특진관, 1904년 황제폐하 외무대신 서리, 잠상시험장장, 1906년 충청도관찰사, 1908년 옥성측량학교장 1910년 대동단 총재와 고문으로 추대,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하였고, 한편 한학과 서예에도 유명하였다.


그리고 1898년 12월부터 1902년까지 여주군수를 지낸 홍병덕(洪秉悳)군수가 1900년 12월 29일 궁내부 대신에게 건의한 공문을 소개하면,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을 관리하면서 1년 5절 7번의 제향을 올리는데 그 비용을 여주군세상납분과 상쇄하여 달라는 상소문으로 그 회신은 불가하다고 한 내용이다. (아래 사진)

 


1777년 이문원 목사를 비롯 1908년 이유중 군수가 마지막으로 조선왕조 후기에 126명이 여주목사와 군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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