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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거리

아름다운 거리

  • 기자명 유지순(본사객원논설위원)
  • 입력 2007.04.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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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보고 싶은 아름다운 거리를 마음에 품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가꾸기에 따라 거리의 모양이 바뀌는 무한한 가능성은 인간만이 가진 자랑스러운 힘이다.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오가며 즐기던 시골길도 하루가 다르게 밭과 논, 야산의 모습이 바뀌면서 주택과 고층아파트, 음식점, 상점과 공장, 러브호텔 등 각종 건물이 들어서고 있어 씁쓸해진다.??시원하게 확 트인 시야 속에 바라보이던 들과 산이 높은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어 답답해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거기에 건물 하나 들어 설 때마다 다닥다닥 붙여지는 원색간판은 눈을 피로하게 하고, 마음까지 삭막하게 만든다. 서울에서 여주까지 국도를 따라 오는 동안 마치 요란한 간판의 숲을 헤치고 달리는 것 같아 숨이 막힐 만큼 간판으로 온 거리가 덮여 있다.


각기 가게마다 개성을 가지고 자기 취향에 맞게 간판을 만들어 다는 것은 좋다. 하지만 보는 사람도 각기 개성이 다르니 느끼는 감정이 달라 원색으로 난무하는 간판 숲을 지날 때마다 괴롭다. 저런 간판들을 모두 규격에 맞게?만들어 좀 더 세련 된 색깔을 입힌다면 보는 사람들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동네 들어가는 입구에 어느 틈엔가 새빨간 빛깔의 무속인의 집을 알리는 간판을 세워 놓았다. 동네 앞에 나무시장은 언제 생겼는지 이곳저곳에 간판이 여섯 개나 붙어 눈을 어지럽게 한다. 세계 각국이 간판 규제가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가 본 나라들 중에 우리나라만큼 간판이 요란한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스위스에 갔을 때 몇 백 년 전에 만든 오래된 시장 거리를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곳을 구경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곳은 시장 거리라 장사를 하고 있는 상점들이 길 양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글씨가 쓰인 간판은 보이지 않고 그 상점에서 파는 물건모양을 자그마하고 귀엽게 만들어 가게에 붙여 놓은 것이 무엇을 파는 집인지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닭을 파는 집은 닭 모양을, 생선을 파는 집은 생선 모양을, 야채를 파는 집은 야채 모양을 만들어 풍경처럼 처마 밑에 달아 놓은 것이 애교스러워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수백 년 전에 시장 문화가 그대로 살아 있는 것 같아 그 거리를 걸으면서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잠기며 물건을 구경하고 사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요즘 지방의 여러 곳에 재래시장이 깨끗하고 새롭게 단장이 되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간판으로 인해 가서 구경을 하고 거닐어 보고 싶은 마음이 일도록 간판의 혁신을 가져 온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서울의 청담동에 가보면 차분한 파스텔 색으로 간판을 규격에 맞게 만들어 온 거리가 아름답고 깨끗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거리 청담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간판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처럼 요란하게 여러 개씩 간판을 붙이지 않았어도 무엇을 하고, 무엇을 파는 집인지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간판이 크고 원색이여야만 눈에 잘 띄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 말이 실감난다. 봄이 되어 집 단장을 하는 철이니 기왕이면 간판도 함께 멋스럽고 세련되게 변화시킨다면 봄을 맞는 기분이 한결 산뜻해 질 것 같다.


대한민국을 간판공화국이라고 한다. 거리 온 천지가 간판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제 전국 15군데서 간판 정비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니 그 곳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확대해 나가기를 희망해 본다.


여주는 예부터 내려오는 양반의 도시, 선비의 도시다. 그 이름에 걸맞게 품위를 지킬만한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려면 다른 도시보다 좀 더 우아하고 세련된 간판을 달아야 할 것이다. 기왕에 만들어 놓은 것을 다시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앞으로 새로 달리는 간판만이라도 신경을 쓴다면 차츰 예쁜 도시로 변모해 나가게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멋스러운 거리를 만들어 놓는다면 스위스의 그 오래 된 시장거리처럼 우리의 후손이 몇 백 년 전에 살던 조상들의 문화를 느끼면서 삶을 즐기지 않을까하고 먼 훗날을 그려 본다.


요즘 여주거리도 간판 정비를 해서 많이 깔끔해 지고 시원해진 느낌이다. 이렇게 차츰 간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나간다면 좋은 인상의 거리가 될 것이다.


이 봄, 산야로 눈을 돌리면 은은한 새싹의 연한 연두 빛이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자연 뿐 아니라 인위적으로 상점을 치장하는 간판도 이런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만들면 우리의 삶이 좀더 차분하고 여유롭지 않을까. 우리의 생각을 조금만 변화시키면 매일 보고 살아야 되는 시야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곳의 간판을 보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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