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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박광천(61)여주도예명장

<여주> 박광천(61)여주도예명장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4.11.1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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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혼 담긴 여주도자 작품 만들 것”

▲ 장원급제와 벼슬을 뜻하는 장닭문호 작품을 설명하는 박광천 도예명장

박광천 여주도예명장은 도예작품 그림들은 사실적 모습을 사실적이고 뛰어난 솜씨로 그려 넣은 도자기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문화재 화공 164호인 그의 스승 인도 이인호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아 도자작품 회화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주신문은 그림이 좋아 도자기와 인연을 맺고 45년간 장인장신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박광천 여주도예명장 만나 여주도자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후세를 위해 여주의 역사가 담긴 도자기 완성에 노력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54년 강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갖고 초등학교 시절 불조심 포스터, 환경미화 그림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부친은 환쟁이는 장차 밥 빌어먹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림 그리는 것을 못하게 했다. 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그림을 그리다가 지게작대기로 얻어맞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희망은 내가 공무원이 되길 원했지만 나는 그림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가출했다. 단지 그림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 생활은 말 그대로 비참했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는 것은 다반사이고 잠은 청량리역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양화학원을 운영하는 성명미상의 은인을 만나면서 나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림을 배우고 먹을 것을 주겠다는 권유로 잔심부름을 하면서 그림을 틈틈이 배웠다.
 

1975년 원장의 심부름을 가던 중 길에서 우연히 고향 후배를 만나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정담을 나누는데 후배가 자신이 다니는 인천의 도자기공장 인 고암도예에서 그림에 소질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곳에서 4년간 화공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9년 여주에 귀향에 해동도예에서 꼬박사(흙을 다지는 사람)부터 물레성형까지 처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10여년간 도예를 배웠다. 나는 1990년 지금의 자리에 전원도예를 설립해 45년째 도예 일을 하고 있다.


-도자기 작품세계가 있다면?

▶천년 도자의 맥을 잇고 있는 여주에 뿌리를 내린지 어느 덧 45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도자기에 제일 중요한 핵심 요소는 질 좋은 흙이다. 흙과 물 그리고 불의 오묘한 조화 속에 도공의 숨결 따라 혼을 불사르면 색다른 흙의 세계가 펼쳐지는 종합예술품이 탄생한다.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숨 쉬는 전통적인 맥을 잇는 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상감철화화장토투계, 청화백자투계, 상감철화화장토 백호민화용춤 등으로 민화를 접목한 것이다.
 

나는 지금껏 나름대로 정립한 작품스타일에 있어 예나 지금이나 작품의 크기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작품에 있어 반드시 나의 손길이 닿아야 직성이 풀린다. 특히 백자 작품의 경우 단아하고 담백한 맛과 멋을 창출해야하기 때문에 작가의 진실성과 정성이 곁들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작품이 탄생한다. 또한 항상 겸손한 마음가짐과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모든 작품에 정성을 쏟고 있다.


-인생철학이 있다면?

▶인생이 무엇인지의 화두에 있어 나는 가마 속의 불꽃과 같이 불의 조화의 갖가지 오묘한 현상을 발하듯 우리네 인생역정이 담겨져 있다.
 

나는 여주에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여주를 도자기에 담고 있다. 명승지인 신륵사, 영릉, 영월루 등을 대상으로 현장엣 스케치 작업을 통해 기물표현을 입힌다. 이런 그림이 담긴 작품은 우리 여주의 역사를 기록하고 후세들에게 여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수십년간 틈틈이 그려온 작품을 보면 나의 어릴적 뛰어 놀던 고향 여주의 추억과 이야기가 새록새록 살아나고 있다. 지금은 여주의 역사를 도자기에 담고 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시간이 지나면 꺼지게 마련이고 아무리 화련한 자태를 뽐내는 꽃도 시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자기는 수천년 수만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고 제작 당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의 인생을 도자기에 담고 우리 여주의 역사를 후세들에게 전설이 아닌 지금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또한 나는 100개의 작품에서 단 한 점의 작품을 건지기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99개의 작품을 망치로 깨버리는 도공의 고집스런 면모도 잃지 않고 살고 있다.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흠잡을 데가 없다 하더라도 도공의 혼이 스며있지 않으면 그 작품은 불가마를 나오는 순간 생명을 다한다.
 

도자기에도 사주팔자가 있는 것 같다. 망치를 맞고 깨질 것인지, 아니면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세상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을지는 가마를 나온 순간 운명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도공은 어느 작품 할 것 없이 모두에 혼을 불어 넣지만 불가마를 거치면서 도자기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린다. 아무리 오랜 시간, 아무리 정열을 쏟아 부어도 가마 속의 불은 도공이 알지 못하는 실수까지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물레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는 박광천 도예명장

-가장 애착을 느끼고 있는 작품은?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출한 도자기 분수대작품이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되면서 분수대 도예가라는 애칭이 붙었다.
 

15여년전 의장특허등록을 마쳐 단순한 관상용의 차원을 떠나 일반 가정의 거실에서 실내 가습기 역할도 하고 있다. 국내 도자기 애호가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선호하고 있는 야심적인 작품이다.
 

특히 국내 최초로 겨울에는 적당한 습도로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장치를 부착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히트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또한 차탁자와 나만의 도특한 스타일에 골프채 함이 있다. 차탁자는 가로 70cm 세로 45cm의 규격으로 기물 표면에 각종 그림 형상을 입혔다. 기물 안에도 산수화 그림 표현 하는 기법은 상당히 어렵고 나만의 작품이기 때문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또 골프채함의 경우 겉 표면에 산수화, 사군자 및 문인화를 입혀 전체적인 형상에 있어 남들과 색다른 나만의 작품을 자부할 수 있다.
 

이밖에도 벽걸이 장식용으로 제작한 대형접시의 독수리 문양은 마치 비상하는 듯 형상을 입혔다. 가로 40cm 세로 43cm의 대작으로 깊은 산속에서 채취한 철토를 재료로 삼아 상감기법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나는 가마에 불을 지필 때면 반드시 목욕재개한 후 정성을 다해 고사를 올린다. 도자기에 쏟아 붓는 정성만큼 고사에도 정성을 다한다. 이유는 도자기를 구을 때의 날씨는 예상치 못한 환경을 만들고 이 때문에 작품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흙과, 물과, 불은 참으로 오묘한 것 같다. 쏟아 부은 정성과 예술혼은 반드시 준만큼 돌려준다. 그러기에 도공들은 온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들고, 그 결과에 반드시 순응할 것이다.
 

-여주도예명장으로서 여주의 도자기 사업의 어려운 점은?

▶나는 그림이 좋고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잇는 다는 생각에 도자기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도예란 긴 시간과 많은 투자가 필요한 배고픈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내아내의 내조로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지만, 많은 도예인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떠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답답하다. 그 만큼 힘이 들고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990년대 까지 여주도자기의 호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도자기를 사기 위해 전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여주를 찾아 왔다. 작품은 가마에서 나오기 무섭게 자기들이 가져가겠다고 줄을 서서 기달 릴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도자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도예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도예인들이 소비자가 원하는 도자기를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또한 원로 도예인들이 훌륭한 작품을 창출해 여주도자기의 명성을 다시 살리고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여주도자기는 천년의 역사로 살고 있다. 예전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천년, 만년 계속 숨을 쉬며 살아 갈 것이다. 

사진/박도금기자 yeoju5@hanmail.net


◆박광천 도예명장은?
▶1954년 출생
▶문화재 화공 164호 인도 이인호 선생 사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문학 최고위 과정 수료
▶1995년 한국문화협회 작가상 수상
▶1996년 한국예술 문화상 수상
▶2009년 황실문화재단 명인증서 수여
▶2008년 여주도예명장 지정
▶2013년 여주시문화상 수상
▶전원도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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