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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김영길(59) 여주도예명장

<여주> 김영길(59) 여주도예명장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4.11.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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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도자 여주, 새로운 전환점 만들 것”

▲ 고백자팔각매죽문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영길 명장

김영길 도예명장은 여주도자기사업에 한 획을 그은 명장으로 할아버지부터 아들까지 4대째 도예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제2대 여주도예명장에 선정된 김영길 명장의 작품 중 고백자팔각철화문 까치호랑이가 반기문 UN사무총장 방에 전시돼 여주도자기 작품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아들과 함께 여주도자사업 발전위해 노력하고 있는 청룡도예 김영길 명장을 만나 여주도자산업 발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젊은 인재를 위한 도예 단지 조성 필요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할아버지께서 황해도 해주에서 옹기를 만드는 일을 하셨다. 가업을 이어받은 아버지께서는 1949년 강원도 홍천으로 이주해 그 곳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린 시절 옹기쟁이였던 부친 김필승 옹을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운 경험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유독 공예시간에 특출한 손재주로 주위의 시선을 받았고, 이러한 재주를 살리라는 주위의 권유도 많이 받았다. 본격적으로 도예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무형문화제 23호인 고 해강 유근형 옹에게 정식으로 도자기를 배우면서 이다.
 

10남매 중 4째로 태어나 16살이란 어린나이에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형제들과 함께 해강청자에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청자, 유약, 조각 일을 하다가 20살 성인이 된 후 광주 분업요원에서 도자기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옥수수밥으로 허기를 때우며 배운 기술은 한 달 봉급이 고작 9000원이었다. 4남매 봉급 모두 합쳐 3만6000으로 가족들이 생활하기 빠듯해 봉급이 많은 붓공장에서 1년간 근무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도자기 일을 하면서 지게에 옹기를 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매를 했다. 그리고 34년전 도자기의 고장인 여주에 정착하면서 분청도자기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0번의 도자기 공장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한 끝에 20여년전부터 청룡도예를 이끌기 시작했다. 어릴때 흙이 좋아 매일 도자기를 배운 것이 인연이 돼 여주로 들어와 살며서 도자기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4대째 도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할아버지부터 아들 김광훈(30)까지 4대째 도예일을 하고 있다. 처음 아들이 도예의 길로 들어선다고 했을 때 흐뭇했지만, 내심 중도에 포기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우려도 됐었다. 도예란 외부에서 봤을 때 화려한 직업으로 보이지만 배고프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권유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은 어릴 때부터 도자기에 관심을 갖고 이천도예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후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주대학교 도예과에 입학해 2011 문경전통찻사발축제’ 부대행사인 ‘문경전통발물레 경진대회’에서 우수상(경북 도자시상)을 수상했다.
 

전통발물레 경진대회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대학생 180여명이 참가한 규모 있는 대회로, 아들이 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전국에 여주도자기의 우수성을 과시했다.
 

또한 제40회 강진청자축제 대학생 물레성형 경진대회에서 대상(전라남도 도지사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은 애견을 키우는 집이 많아지면서 콩을 이용해 냄새를 없애는 초를 접목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나 또한 그랬듯이 아들이 흙을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우리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명장님만이 추구하는 도자기 작품세계는?

▶선조들의 전통방식의 도예에 혼을 담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바로 장인정신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우리 여주에 전통가마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통가마를 사용하려면 재단에 신청하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 도자기는 장작을 이용해 도자를 구울때 비로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전통가마를 만들기 위해 넓은 부지가 필요하고 값 비싼 장작을 사용하기 때문에 도예인들은 가스가마를 선호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불량률은 낮지만 옛 선인들이 빚어내던 도자기의 빛깔은 재현하기 힘들다. 때문에 개인가마가 필요하다.
 

현재 무형문화재인 한상구 옹이 개인가마를 소유하고 있지만 여주시의 지원으로 명장과 많은 도예인들에게 지원을 해 여주도자기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게 해야한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여주도자기의 명맥을 잇는다는 것은 도예인 발굴도 필요하지만 옛가마터를 발굴하고 보존이 필요하다. 여주도예명장으로서 여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도자기를 굽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제안도 했었다. 전통방식으로 옛 선인들의 도자기를 재현해 무형문화재로 선정되는 것이 나의 인생 목표다.


-인생철학이 있다면?

▶하고자 하는 일에 성공을 위한 삶이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노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늘 그런 생각으로 살아 왔듯이 앞으로도 성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나는 그 사람들을 위해 보다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이 나의 작품이 반기문 UN사무총장 방에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백자팔각철화문 까치호랑이 작품으로 까치는 길조의 상징이고 호랑이는 액운을 막아주는 동물이다. 나의 작품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를 대표하는 분의 방에 전시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나는 내가 성공해서 나의 작품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노력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평가를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 좋은 작품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도예인이 될 것이다.


▲ 김영길 명장이 여주도자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여주도예명장으로서 여주의 도자사업의 어려운 점은?

▶도자기는 예술이다. 예술은 배고픔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도예인들이 여주를 대표하는 도자기를 만들고 있지만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0년대 초반 까지 여주도자사업은 말 그대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7년 이후 도자사업은 하향길을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많은 도예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도예를 배우지 않고 인재들이 다른 일을 찾고 있는 것이다.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물건이 없어 못 팔고 2~3명의 직원을 고용했지만 지금은 직원들의 인건비 때문에 가족들이 운영하는 공장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아내와 같이 운영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도예인들이 소비자가 원하는 도자기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공유해야 한다. 또한 고가의 작품을 고집하지 말고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제품도 필요하다. 합리적인 가격과 판매처 확보가 우리 여주의 천년도자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여주도자기의 특징은?

▶우리 여주에는 도자기 종사업체가 약 600여개가 있다. 260개에 불과한 이천·광주보다 뛰어난 디자인과 인재들이 많다. 또 성형제품을 위한 석고 거푸집 제작업체가 20여개가 업체가 있어 디자인개발에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타 지역 도예인들이 여주도자기를 모방해 판매하고 있을 정도이다. 다시 말하면 타 지역 도예인들이 여주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여주도자기 위상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유약으로 여주만의 특색 있는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이제는 더 나가 여주시에서 적극적인 지원으로 싸리산 점토, 능서점토 광업을 활성화해 저렴한 가격으로 도예인들에게 공급해 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젊고 참신한 인재 육성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젊은 도예인 발굴은 우리 도예사업의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젊은 인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창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인재를 위해 여주에도 임대공장 단지가 필요하다. 저렴한 월세로 젊고 참신한 인재들이 작품활동을 하고 원로 도예인들의 기술전수로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주에 이런 시설이 없다보니 젊은 인재들이 인근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볼 때 답답한 마음이 든다. 젊은 인재는 여주도자의 미래다. 또한 여주도예명장이 서류상 명장이 아닌 대한민국 명장을 위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도예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도예인들이 자기 개발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맡은 바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주길 바란다. 천년 도자 여주의 명맥은 우리 도예인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젊은 인재 발굴에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
사진/박도금기자 yeoju5@hanmail.net


◆김영길 도예명장은?
▶1956년 출생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재과 졸업
▶명지대학교 도자기기술학과 수료
▶일본 도고나메시의 도예작가 초대전
▶한중교류전 이상시 남경전시회 출품
▶한인협회 주관 미국 뉴욕전시회 출품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여주시문화상 수상
▶경기도 으뜸이 선정
▶대한민국 신지식인 문화예술부문 16호 지정
▶여주도예명장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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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경 2014-11-06 14:49:03
정말 멋지신분이 여주에 계신다니 여주에 사는것이 살맛납니다.
더욱더 여주도예을 널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