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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원경순 - 52

   
▲ 조성문(여주문화원 사무국장)
원두표(元斗杓)의 증손자인 원명직(元命稷)이 2남3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원경순이고 셋째 딸은 김한구에게 시집을 가서 영조(英祖)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를 낳은 오흥부부인(鰲興府夫人)이다.
 

원경순(元景淳 1701-1765)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도이(道以, 道而). 어머니는 영의정 이여의 딸이다.
 

원경순은 여주읍에 살면서 8세에 한시(漢詩)를 지어 천재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일찍 부모를 잃었지만 농사와 공부를 병행하며 과거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1736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수찬, 헌납, 교리, 사간, 응교등의 청요직(淸要職)을 번갈아 지냈다.
 

1743년 홍문관 수찬으로 있을 때 가뭄과 관련하여 절약할 것과 죄인들의 석방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우리 전하께서 한재(旱災)를 당한 이래로 몸소 기도를 올리신 것이 3차례에 이르렀고 주방(酒房)의 찬품(饌品)을 감손하고 옹주의 혼구(婚具)를 재감하기에 이르렀으니, 가뭄을 민망히 여겨 스스로 경계하고 성찰하신 데 대하여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반드시 먼저 유사(有司)가 제공하지 않는 것과 외인(外人)이 알지 못하는 것부터 일체 삭감하여 무릇 재억(裁抑)하고 절약하는 데 관계된 방도가 순수하여 한결같이 불쌍히 여기는 정성에서 나와 털끝만큼이라도 사람들이 지켜보는 데 따르는 뜻이 그 사이에 섞이지 않아야만 저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무릇 한재를 만나 죄수를 구휼하는 성명(成命)이 내렸는데도 여러날 지연하였으니 가뭄으로 인해 위급한 지경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려는 뜻이 미치지 못 할까 두렵습니다. 또 적당히 헤아려 재처(裁處)할 즈음에 혹시라도 선후의 차례를 잃었거나 경중의 마땅함에 어긋나서 악역(惡逆)에 관계된 자도 혼동하여 석방되고, 죄가 생재(과실로 인한 해악)에 관계된 자가 용서받지 못한다면 더욱 화기(和氣)를 인도하여 재앙을 그치게 하는 효과가 없고, 한갓 제방(堤防)을 무너뜨리고 혼란을 조장하는 데로 돌아 갈 것이니 이것을 또한 신은 깊이 두려워 하는 바입니다.” 원경순은 1741년 재산을 모두 소실하고 가난한 생활에 찌들면서도 18살때 어머니를 여읜 뒤 아버지가 맞아들인 계모의 봉양에 극진하였다.
 

1753년 양주(楊洲)목사가 되었고 대사간, 대사헌, 도승지, 전라도관찰사, 강화(江華)유수를 역임했다. 우참찬을 거쳐 1764년에 예조판서가 되었으나 노모의 병 구완을 위해 사직하고 여주로 돌아왔다. 이후 공조판서, 경기도관찰사로 있다가 사직한 뒤 1765년 1월5일 죽었다. 그가 죽자 영조는 친히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 원경순의 성품을 짐작케하는 일화가 실록에 실려있다.
 

1806년(순조6) 6월26일. 전 정언 원유붕(元有朋)이 상소하기를 “신의 조부 원경순이 호남의 절도사로 나갔다가 계미년 여름에 체직되어 돌아오자 김귀주(金龜柱: 정순왕후의 오빠)가 구생(舅甥: 외삼촌과 조카)의 의리로써 와서 뵈니 신의 조부가 내실로 인도해 들였는데, 말이 국사(國事)에 미치자 휴척(休戚)을 같이하는 사이로 책망한 즉, 김귀주가 비웃기를 ‘작년의 일인데 누가 감히 사단을 일으키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집의 처지는 다른 사람과 달라서 오히려 타일에 앙화가 장차 불측(不測)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하므로 신의 조부가 말하기를 ‘국척(國戚)의 처지로는 진실로 네 말과 같겠다. 너의 외삼촌인 나는 이미 의(義)로써 죽음에 처하지는 못하였다고 하나 네가 또 화복(禍福)을 가지고 말하느냐?’ 하니 김귀주가 발끈 성을 내며 말하기를 ‘사건의 한계를 이미 지났으니 다시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이어 빈궁(嬪宮: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을 말로 핍박하여 기사년의 여론을 멋대로 발설하였는데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신의 조부가 벌떡 일어나 바로 그의 얼굴을 후려 갈기고는 그대로 쫓아 버리고 종신토록 보지 않았으니 이것은 신이 어릴 때 직접 본것입니다.” 하였다. 시호는 정헌(正獻)이고 묘는 북내면 지내리(池內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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