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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이기진 - 50

   
▲ 조성문(여주문화원 사무국장)
여주 없는, 여주사람 없는 조선왕조를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한 지역에서 많은 인재들이 벼슬길에 나서다 보니 서로 뜻이 맞지 않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었다. 이기진과 원경하(元景夏)의 경우가 그랬다.
 

1743년(숙종19) 7월1일 원경하가 이조참판이 되었고 9월25일 9년 선배인 이기진이 이조판서에 제수되면서 동향 선후배가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완만함과 준엄함이 각기 달라 가부(可否)를 논함에 있어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앙앙불락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함께 벼슬을 버리게 되는데 원경하가 먼저 소장을 올리고 도성을 나갔고 이어 이기진도 곧 고향 여주로 돌아와 버렸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숙종이 이기진을 홍주목사(洪州牧使)로, 원경하를 청풍부사(淸風府使)로 좌천시켰다. 이후에도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기진이 한꺼번에 28명의 벼슬후보를 추천한 일을 두고 1746년 2월3일 원경하가 임금에게 이기진을 비난하자 이기진이 다시 해명상소를 올리면서 싸움은 극에 달하였다.
 

당시 이들의 다툼은 실록에도 기록되어있다. “ … 대개 이기진은 일찍이 원경하와 한 마을에 살았으므로 서로 교분이 매우 두터웠는데 조정에 벼슬하기에 이르러서는 취향이 서로 합치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기진은 원경하가 시론(時論)에 부합하고 세리(勢利)를 따르는 것을 미워했는데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점점 소원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원경하 역시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기진을 싫어해서 늘 조정에 상소하여 배척하였다. 우연히 조방(朝房; 조신들이 조회의 때를 기다리며 모여 있던 대궐 밖의 집)에서 만나면 서로 욕설을 하기도 했었다. …”
 

이기진(李箕鎭 1687-1755)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군범(君範). 호는 목곡(牧谷). 이식(李植)의 증손자로 이당의 아들이다. 1717년 진사가 되고 같은 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조참의가 되었다.
 

1727년 강화유수가 되었으나 왕세자의 관례 때 봉전문(封箋文)을 지어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되어 여주로 돌아왔다. 고향에 머물고 있던 중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대사성에 임명되었고 반란이 평정된 후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대사간, 형조판서, 경기도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1745년 다시 경기관찰사, 판의금부사,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751년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이기진은 바른 말로 임금을 깨우친 바가 적지 않았는데 영조가 즉위하자 “우선 ‘붕당(朋黨)’ 두 글자를 한쪽에 놓아두시고 먼저 의리의 지극한 곳에 나아가 그 당연히 해야 할 바를 밝혀 신민들이 모두 민이(民彛)와 물칙(物則)의 소재를 환히 알게 되도록 한다면, 올바르지 못했던 사람들은 다시 사특한 짓을 하게 될까 두려워하게 되고 충성스럽지 못했던 사람들은 다음에도 반역하는 짓을 하게 될까 두려워하게 되어 탕평(蕩平)되기를 바라지 않아도 자연히 탕평해지게 될 것입니다” 하였고 소대(召對)를 행하는 자리에서는 “지금 중원은 바로 오랑캐의 원(元)나라와 같은 것이니 효종(孝宗)께서 복수설치(復讐雪恥)하려고 하신 뜻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열성조 이래 분노를 참고 원통함을 품은 생각을 일찍이 하루도 잊지 않았었기에 식견이 있는 신민들은 모두 비풍하천(匪風下泉;《시경》曹風의 편명, 周나라 왕권이 점점 쇠약해짐을 개탄하면서 옛날의 왕실을 생각하는 내용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인심을 수습하고 사기를 진작해 간다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라고 하여 효종의 뜻을 명심하라고 아뢰었다.
 

이기진이 죽자 사관은 이렇게 적었다. “집에 있으면서 행검(行檢)이 있었고 조정에 서서는 염간(廉簡)을 지켰으며 순실(純實)하고 곧은 말을 잘하여 아주 고가(故家)의 전형(典刑)이 있었다. 60세에 후모(後母)의 상(喪)에 복을 입으면서 예를 다하다 병이 나 죽으니 사람들 모두가 애석하게 여겼다.” 시호는 문헌(文憲).

 

여주신문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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