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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3.10.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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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시중 - 39

   
▲ 조성문(여주문화원 사무국장)
강원도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에게 시중(蓍重), 정중(鼎重), 유중(維重)이라는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여흥 민씨 삼방파(三房派)는 이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들의 후손들은 조선말기까지 약 300년동안 문과급제자 70인, 상신(相臣) 7인, 묘정배향(廟廷配享) 6인, 정이품 판서이상 47인, 종이품 및 정삼품 당상관 80여명을 배출해내는 명문가를 이루게 된다.
 

민시중(閔蓍重 1625-1677)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공서(公瑞). 호는 인재(認齋).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1650년 생원시험에 장원하고 1664년 춘당대문과 회시에서 장원급제하였다. 이무렵 흑산도(黑山島)에는 사람이 살고있지 않아서 왜구들이 좋은 목재를 채취하려고 자주 출몰하였다. 급제이후 병조좌랑을 역임했던 민시중이 호남일대를 돌아보고 흑산(黑山)·임치(臨淄)·자은(慈恩)·비금도(飛禽島)에 진(鎭)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노비와 이속들을 진 근처에 살도록 하여 평시에는 둔전(屯田)을 개간하고 무예를 익히다가 비상시에는 배를 타고 방어에 나설 수 있도록 하므로서 흑산도에서 지속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민시중은 수원부사를 거쳐 1669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그가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남긴 치적이 실록에 실려있다. 1670년 8월14일 가을추수가 가망이 없어 백성들이 아침 저녁끼니를 잇지 못하게 되자 이런 때 군졸들을 모으게 되면 폐단이 적지 않을 것이므로 수군의 조련을 일체 정지시켰다. 8월17일 떠도는 거지들이 길에 가득한 채 살 곳을 잃고 방황하면서 어린아이들을 길가에 버리는 일이 잇따랐는데 백성들을 모집하여 거두어 기르게 하였다. 8월30일 “다른 도의 유민들이 진주(晋州), 함양(咸陽)등 10여 고을에 가득하여 꼭 굶주린 까마귀 떼 같은데 도둑질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노약자는 구렁에 엎어져 죽을 것이며 건장한 자는 도적이 될 것이니 제때에 구제해서 다른 근심이 없도록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고 임금께 아뢰어 대책을 마련하게 하였다.
 

10월2일 경상도에서 진헌할 호표피(虎豹皮)의 값을 진휼하는데 보태쓰겠다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11월16일 경상도의 전결(田結)의 등수를 낮추어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1671년 1월19일 통영(統營)의 벼 4천석을 덜어내어 좌·우도(左右道) 각 진포(鎭浦)의 군졸에게 고루 나누어주어 그들의 생활을 도와주었다. 2월4일 좌도의 해변을 방어하는 군졸에게 지급하는 번포(番布)를 나라에서 줄였으므로 군졸들이 의지해 살아 갈 길이 없어서 구덩이에 굴러 죽을 걱정이 조석에 닥치자 월과미(月課米)를 덜어내 나누어주고 죽을 쑤어 구제하였다.
 

민시중이 보고한 당시의 참상 중에 하나다. “선산부(善山府)의 한 여인은 그의 여남은 살 된 어린 아들이 이웃집에서 도둑질하였다 하여 물에 빠뜨려 죽이고, 또 한 여인은 서너 살 된 아이를 안고 가다가 갑자기 버리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갔으며, 금산군(金山郡)의 굶주린 백성 한사람은 죽을 먹이는 곳에서 갑자기 죽었는데 그의 아내는 옆에 있다가 먹던 죽을 다 먹고 나서야 곡하였습니다. 천성으로 사랑하는 관계인데도 죽이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며 죽음에 대한 슬픔이 먹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으니 윤리가 딱 끊겼습니다. 이는 실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민시중의 마음 씀씀이가 이러하였기에 그가 임기를 마치고 경상도를 떠나자 대구(大邱) 백성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는 청덕무휼군졸영세불망비(淸德撫恤軍卒永世不忘碑)를 세워주었다.
 

이후 민시중은 호조참판, 강화부유수를 역임했고 대사헌과 형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였다. 민시중은 53세에 죽었는데 재주와 방책은 두 아우에게 미치지 못하였지만 충후(忠厚)함은 앞서므로 사람들이 선인(善人)으로 불렀다고 한다. 묘는 능서면 오계리(梧溪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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