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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3.08.2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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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구 - 34

   
▲ 조성문(여주문화원 사무국장)
국가의 위난을 당해 빛나는 무공을 세운 여주인으로 임진왜란 때 원호(元豪)와 병자호란 때 홍명구가 있었다. 이들은 45년의 시차를 두고 강원도 김화(金化)에서 각각 전사하였다. 홍명구(洪命耈 1596~1637)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로(元老). 호는 나재(懶齋). 병조참의를 지낸 홍서익(洪瑞翼)의 아들로 영의정 홍명하(洪命夏)의 형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였던 홍명구는 8살 때 이웃에 살던 정승 이항복(李恒福)의 집에 놀러갔다가 이항복의 권유로 시 한수를 지었는데 ‘상국간무사 유지종화류(相國間無事 惟知種花柳) 정승이 한가로이 일이 없으니 다만 꽃나무만 심을 줄 아누나.’ 하니 이항복이 깜짝 놀라며 “네가 나로 하여금 마음을 부끄럽게 하는구나. 너는 후일 재상이 되면 이 쓸모없는 늙은이같이 되지 말라”하였다고 한다.
 

홍명구는 1619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나 시골에서 은거하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에 등용되어 대사간, 부제학을 거쳐 1635년 12월25일 평안도 관찰사가 되었다. 1636년 4월 홍명구는 춘신사(春信使) 나덕헌(羅德憲)과 회답사(回答使) 이곽(李廓)이 스스로 ‘대청황제(大淸皇帝)’라 칭하는 청태종의 답서를 물리치지 않고 받았으므로 이들의 목을 베어 청나라 궁궐 문 앞에 던지자는 상소를 올렸다. 청의 오만함에 당당히 대항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해 7월 의주의 옛성을 수축하여 관방(關防)으로 삼고 부원수를 창성(昌城)으로 옮겨두어 청의 침입에 대비코자 하였으나 김류(金瑬)의 반대로 안타깝게 채택되지 않았다. 12월. 마침내 청태종이 10만의 정예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이른바 병자호란(丙子胡亂)이었다. 당시 동북아 최강의 기병을 자랑하던 청나라는 10년 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경험한 조선군의 산성방어전략을 역이용하여 빠른 기동력으로 국경을 넘은 지 5일만에 한양에 도달했다. 이들의 신속한 움직임에 인조임금은 미처 강화도로 피난하지 못하고 남한산성에 고립되게 되었다.
 

자모산성(慈母山城)을 지키던 홍명구는 적이 곧바로 한양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별장 장훈(張壎)에게 2,000기(騎)를 주어 구원하게 하는 한편 자신은 날랜 포병 3천명을 선발하여 병사(兵使) 유림(柳琳)에게 동행할 것을 재촉하였다. 그런데 유림이 뒤따라오다가 강동에 이르러 조정의 명령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군대의 행진을 저지시키려하자 홍명구가 꾸짖기를 “군부가 화란을 당했으니 직분 상 목숨을 바쳐야 마땅하다. 더구나 적으로 하여금 군사를 나누어서 전투하게 함으로써 남한산성(南漢山城) 공격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한가지 계책이다”하고 진격을 독려하였다. 급히 남하하던 홍명구는 김화에서 적의 대병과 부딪쳐 적 수백명을 사살하고 몸에 3대의 화살을 맞아가며 분전하던 끝에 전사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아 휘하 장병들이 힘껏 싸워 적을 물리치니 병자호란 중에 적을 이긴 싸움은 이 전투와 김준룡(金俊龍)의 광교(光敎)싸움 뿐이었다.
 

홍명구의 전사소식이 전해지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임금도 울면서 “내가 평소에 그의 사람됨을 알았다. 이렇게 나라가 결딴 난 때에 단지 이 한사람이 있을 뿐이다.”하고 이조판서에 추증하도록 명하였다.
 

인조가 홍명구를 가상히 여기는 것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638년 홍명구의 노모가 죽자 관곽과 역군을 보내주도록 하였으며 1639년 홍명구의 처자를 공신의 집안으로 대우하게 하고 1641년 아들 홍중보(洪重普)를 영릉(英陵)참봉에 임명하였다. 또 1649년 인조가 죽기 직전에는 홍명구의 손자 홍득기(洪得箕)를 효종의 둘째 딸인 숙안공주(淑安公主)의 남편으로 삼았다.
 

홍명구는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동생 홍명하와 함께 기천서원(沂川書院)에 배향되었다. 묘는 금사면 이포리(梨浦里)에 있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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