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태(가톨릭대학교 ELP 학부대학교수) |
오솔길을 걸으리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다. 폭이 4~5m는 족히 됨직한 임도가 산 정상을 향해 굽이굽이 놓여있다. 임도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마치 한 여름인 양 물소리가 우렁차다. 맑고 푸른 물이 풍성하다. 그래서인가 계곡 옆으로는 다랑이 논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은 층층으로 된 논배미에 잣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계곡물에 물고기가 힘차게 달릴 만하니 주어사(走魚寺)라는 명칭에 걸맞는 풍경이다. 그 옛날 절 지을 곳을 찾던 스님이 잉어를 따라가는 꿈을 꾸고 이곳에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나옴직하다. 마치 등용문에 오르는 잉어처럼 부지런히 학문을 갈고 닦던 젊은 유학자들의 패기가 서릴 만하다.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 인용된 『시경(詩經)』의 ‘어약연비(魚躍鳶飛)’, 연못에는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하늘에는 솔개가 높이 난다는 구절을 가슴에 품었을 선비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약동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꿈꾸었던 이들의 환영이 계곡물에 어린다.
임도 양편으로 가슴께까지 오는 어린 느티나무가 4~5m 간격으로 촘촘히 심어져 있다. 천주교의 전임 수원교구장인 최덕기 주교가 이태 전에 산북공소 신자들과 함께 심은 것이란다. 교구청에서 키우던 1300여 그루의 묘목을 이곳에 옮겨 심었다고 하니 그 정성과 의미가 남다르다.
먼 훗날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모인 이들이 세파에 지친 심신을 내려놓고 보다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는 정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문득 거친 황야에 매일 도토리 백 개씩을 심어 후일 푸른 숲으로 만들었다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 떠오른다. 바람과 먼지만이 흩날리던 곳에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낭랑한 새소리가 들리고, 평화로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그런 아름다운 풍광이 언젠가는 이 앵자봉에도 펼쳐지리라.
삼십여 분간 비탈길을 오르자 여주군에서 세운 안내판이 나그네를 맞는다. 주어사지의 유래와 앵자봉 인근의 지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재작년에 이곳과 요사체가 있던 다섯 곳에 안내 표지판을 세웠단다.
여주군은 이어 지난해 4월 이곳을 문화재(향토유적)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단다. 가파른 길가에 설치한 밧줄을 잡고 오르는 곳에 5호, 4호, 3호, 2호 건물지 안내판이 자그마하게 꽂혀있다. 토기, 자기편, 기와편만 수습되었다는 안내문이 서운하다. 좀 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下편은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