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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3.06.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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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元豪)-26

   
▲ 조성문(여주문화원 사무국장)
1592년 4월14일 20만 왜군의 선봉으로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끄는 1만8천700명의 병력이 부산에 상륙하므로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탄금대에서 신립(申砬)의 군대를 격파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올라오다 여주 남한강 신륵사에서 제동이 걸리는데 이는 원두표의 할아버지인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호(元豪 1533∼1592)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중영(仲英). 첨지중추부사 원송수(元松壽)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생원 안순(安珣)의 딸이다. 김덕수(金德秀)에게 글을 배워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그러나 윤두수, 윤근수, 이해수등 교유하던 친구들과는 달리 과거에 계속 낙방하자 탄식하고는 문(文)을 버리고 무(武)를 택하여 1567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전관으로 임명된 뒤 경주통판으로 옮겨갔다가 운산, 단천군수를 지내고 경흥부사를 거쳐 경원부사가 되었다. 경원부사로 있을 때 북쪽의 여진족 니탕개(尼湯介)가 침입하자 부하를 거느리고 적진 깊숙히 쳐들어가 적병을 모두 격퇴하였다.


1587년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로 재직 중 전라좌도에 왜구가 침입하였는데 이 사실을 통고받지 못해 정상을 모르고 있다가 인책되어 고향 여주에 머물렀다. 향병(鄕兵)을 이끌며 한때나마 왜군의 한양 진격을 저지시키는데 성공했던 원호는 당시 원주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의 일단이 구미포(龜尾浦)에 들어가 약탈을 일삼자 새벽에 적의 감시병을 포로로 잡아 이들을 앞세워 적을 습격하여 대파하였다. 이는 왜란초기 한강에서 거둔 조선군 최초의 승리였다.
 

구미포에서 적을 섬멸한 원호는 마탄(馬灘)으로 가서 이천부사 변응성(邊應星)과 협공하여 왜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의주로 몽진(蒙塵)길에 올라있던 선조임금은 이 승전보를 듣고 기뻐하며 원호에게 경기·강원 방어사겸 여주목사의 벼슬을 내렸다. 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에 “당시 적의 대진(大陣)은 충주와 원주에 있었는데 연영(連營)으로 한성에 이르렀다. 충주에 있는 왜적들은 죽산·양지·용인길에 통하여 왕래했으며 원주에 있는 자들은 지평·양근·양주·광주를 거쳐 서울에 이르려고 했다. 원호는 여주 구미포에서 적을 섬멸하고 이천부사 변응성 또한 사수를 배에 실어 안개를 틈타 갑자기 여주 마탄을 들이치니 살적(殺賊)함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이천·여주·양근·지평등의 읍민들은 적봉(賊鋒)을 피할 수 있었으니 사람들은 원호와 변응성의 공이라 생각했다”라고 썼다.
 

이후 원호는 북쪽에 있는 왜군 토벌의 임무를 맡고 김화(金化)로 진군하던 도중 적의 복병을 만나 포위되자 깊은 산 절벽에서 투신하고 말았다. 실록에 “감사 유영길(柳永吉)이 원호로 하여금 금화(金化)에 주둔한 적을 공격하도록 하였는데, 적이 미리 알고 요해지에 복병을 설치하여 원호가 포위를 당하고 형세가 위축되어 마침내 해를 입었으며 병사들도 탈출한 자가 적었다”고 적혀있다. 왜군은 원호의 머리를 잘라 김화고을 성문에 매어달고 “조선군사와 백성이 모두 귀순했는데 원호만이 우리에게 항거하였기로 이같이 벌을 준다”라는 글귀를 써붙여 놓았다. 김화의 고을사람들이 이를 애통히 여기고 시신에 표를 해 두었다가 밤에 몰래 시신을 거두어 여주까지 운구하여 북내면 장암리(長岩里) 선영아래 장사를 지냈다.
 

원호는 청백하기로도 이름이 높았다. 은(銀)의 고장인 단천군수로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은반지 하나를 사 낀 일이 있었다. 이를 본 원호는 “은고지(銀庫地) 원으로서 은물건을 우리집에 두다니…”하며 아내와 같이 물건을 사온 종을 매질하고는 은가락지를 빼앗아 버렸다. 은가락지가 혹여 뇌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염려에서였다.
 

이 일화는 대동기문(大東奇聞)에 전한다. 선조임금은 원호의 전사소식을 접하고 애통히 여기어 병조판서로 증직시켰다. 뒤에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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